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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설계사·학습지교사·캐디도 고용보험 가입 허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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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오른쪽)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위’에 참석해 모두발언 하고 있다. [뉴시스]

앞으로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택배 및 퀵서비스 기사, 레미콘 자차 기사, 골프장 캐디 등 6개 특수 직종 종사자도 산재보험 외에 고용보험 가입을 허용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직장을 잃으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지금은 산재·고용보험 가입이 안 되는 신용카드 및 대출 모집인과 대리운전기사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한다. 35세 이상 기간제·파견근로자가 원하면 최장 4년까지 같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비정규직도 3개월만 일하면 퇴직금을 받고 계약기간을 다 채운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퇴직금 외에 이직수당도 따로 받게 된다. 비정규직이 차별을 받으면 본인이 직접 해결해야 하는 현재와 달리 노조를 통해 구제받을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생활고를 겪는 일용직이나 건설근로자는 정부로부터 생계비를 융자받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29일 이런 내용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노사정위원회에 보고했다. <중앙일보 12월 23일자 1, 5면

 이번 대책의 가장 큰 골격은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업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관행을 줄이자는 취지다. 이는 역으로 경영계의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3개월만 일해도 퇴직금을 지급하면 경영계는 연간 5조4007억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는 게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추산이다. 퇴직금에다 고용기간에 받았던 임금의 10%를 이직수당으로 지급하면 부담은 더 늘어난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발표되자마자 경총이 “비정규직의 범위를 과도하게 넓히고 비정규직 고용에 대한 규제만 강화했다”며 강도 높게 비판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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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도 이런 경영계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본지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선진국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유연성 확보 차원에서 고용한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유연성을 확보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임금 격차를 활용하려는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보다 인건비 절감 의도가 강하다는 얘기다. 2001년 364만 명이던 비정규직 근로자가 2005년 548만 명으로 불어나더니 올해는 600만명을 넘어섰다. 월 평균임금은 정규직의 60% 안팎에 불과하다. 이 장관은 “기업이 모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비정규직을 고용하더라도 처우만큼은 확실히 하라는 메시지를 이번 대책에 담았다”고 말했다. 차별 시정 과정에 노조가 개입하기 전에 기업이 먼저 정규직과의 격차를 좁히라는 메시지다.

 이와 함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회도 넓혔다. 고용기간을 연장하는 것과 함께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임금 인상액의 50%를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올해 사업체 근로자 현황 조사 결과 1년 6개월 미만으로 일한 비정규직은 100명 중 7명만 정규직이 됐다. 이와 달리 2년을 일한 비정규직은 절반 가까이(42.4%)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고용부 권영순 노동정책실장은 “숙련도가 높은 근로자는 기업의 자산이다. 생산성이나 성과와 직결되는 인력이기 때문에 기업이 내치기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노조의 입장은 다르다. 한국노총이 비정규 노조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10명 중 7명가량이 고용기간 연장을 반대했다. 그래서 “비정규직 양산 대책”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런데 노조원의 생각과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기간제 근로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학계 전문가들이 이달 초 기간제 근로자와 구직자 118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82.3%가 기간제 사용기간을 연장해 주길 바랐다.

 경영상 해고는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회사 사정이 좋아지면 해고된 근로자를 우선 채용토록 구조조정 기업에 대한 고용·채용절차를 세세하게 법에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성과가 낮은 근로자의 해고를 둘러싼 분쟁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그동안의 판례를 정리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방침이다.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데 따른 재량근로나 탄력근로는 확대된다. 근로시간보다 성과를 중심으로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이날 노동시장개선특위를 열고 비정규직과 원·하청 문제, 임금과 근로시간 등의 현안에 대해 내년 2월까지 패키지 합의 방안을 마련한 뒤 3월 최종 합의안을 내놓기로 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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