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침입 vs 경비, 끝없는 게임 같은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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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추석 휴가요? 21년째 그림의 떡입니다."

무인경비업체 에스원의 관제팀장 신광철(48) 부장은 명절이면 신경이 곤두선다. 평상시 하루 10~15건 정도이던 '상황 발생'(외부인 침입)이 명절에 즈음해서는 30~40건으로 늘기 때문이다.

그가 일하는 곳은 서울과 수원의 에스원 관제실. 160명의 요원이 하루 24시간 전국 48만 서비스 가입자들의 이상 유무를 컴퓨터 화면을 통해 끊임없이 모니터하는 곳이다. 이상 신호가 뜨면 상황을 판단해 근처 현장 요원들에게 출동을 지시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물론 침입이 전부 절도 같은 범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긴장의 연속일 수 밖에 없다.

"상황 접수 후 출동까지 서울시내는 5분 미만, 전국적으로는 평균 7분이 걸립니다. 때문에 침입해서 실제 범행에 성공하는 경우는 4% 정도에 불과합니다. 피해품도 대개는 금방 들고 갈 수 있는 간단한 물건들이지요."

신 부장이 에스원에 입사한 것은 1984년. 무인경비업이라는 업종이 소개된지 3년째 되던 해였다. 특전사를 제대한 뒤 경찰 입문을 준비하던 중 '잠깐 경험이나 쌓을 생각'으로 들어온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입사 선배나 동기 중 서너 명이 남아있긴 하지만, 신 부장을 제외하곤 일찌감치 영업쪽으로 빠져 현장 요원으로는 최고참이다.

"경제가 안 좋으면 어김없이 '상황'이 늘어납니다. 98년 외환위기 와중에는 한해 5300여 건이나 발생했지요. 그 때보다 가입자가 4배나 늘어난 지난해에 4700여 건이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수치지요."

신 부장은 "최근 들어 다시 상황이 늘어나는 것 같다"며 "그만큼 먹고 살기가 힘들어졌다는 반증 아니겠느냐"며 씁슬해했다.

신 부장에 따르면 무인경비업체 요원이 직접 범인을 잡는 경우는 뜻밖에 드물다. 무인경비의 본업은 어디까지나 범죄 예방이지, 범인 체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 부장은 부하들에게 가급적 무기를 든 범인과는 직접 싸우지 말고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충고한다.

"초보 범죄자와 초보 요원이 만날 때 가장 위험합니다. 서로 극도로 긴장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충돌해 큰 부상을 입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현장 요원이 범인 체포에 직접 나설 때도 없지 않다. 신 부장도 지금까지 현장에서 직접 잡아 경찰에 넘긴 범인이 12명쯤 된다.

신 부장은 "경비기술과 범행수법은 영원히 쫓고 쫓기는 게임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범인들은 귀신같이 무인경비의 허점을 파고드는가 하면 고도의 심리전을 펴는 경우도 있다.

"한번은 보석 가게에 침입 상황이 발생해 출동했더니, 깨끗한 양복 차림을 한 중년 신사가 태연히 '아, 역시 출동 빠르군. 내가 주인인데 한 번 시험해봤어'하더군요.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나오다가 예감이 이상해 신분증을 요구했더니 비로소 정체를 드러내더군요."

신 부장은 "무인경비 서비스를 맡겼다고 무조건 안심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추석을 맞아 집이나 가게를 비우는 가입자들에게 충고한다. 중요한 물건은 금고나 서랍 속에 넣고, 창가에는 절대 두지 않는 등 스스로 안전책을 강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되도록 범행에 걸리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길게해 경비 요원이 출동할 시간을 벌게 해줘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글=이현상,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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