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핀테크 경쟁 … 모바일 넘어 '웨어러블 뱅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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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국 금융권의 내년 화두는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핀테크와 생존이다. 특히 핀테크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새해를 앞두고 국내 금융회사들이 핀테크 공략에 나서는 이유다. 이대로 가다간 국외 기업에 안마당을 다 내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배경에 깔려 있다.

 NH농협은행은 내년 1월 5일 ‘워치뱅킹’을 시작한다. 삼성전자 갤럭시 기어 같은 스마트 시계를 통해 계좌 잔액 조회, 거래 내역 확인, 본인 인증이 가능하다. 금융거래 수단을 스마트폰에서 시계로 넓혔다. 국내 금융회사로는 처음 시도하는 ‘웨어러블(입을 수 있는 기기로 하는) 뱅킹’이다. 정재헌 농협은행 팀장은 “자금 간편이체 등 스마트폰에서 가능한 금융 거래 모두를 스마트 시계에서 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서비스 범위를 확장해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KT 올레TV와 함께 하고 있는 ‘TV 머니’ 서비스를 내년 2월 확대 실시한다. 현대홈쇼핑과 새로 손을 잡았다. 인터넷TV(IPTV)로 홈쇼핑 방송을 보다가 리모컨 조작으로 간편하게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IBK기업은행은 인터넷 전문은행을 설립할 계획을 갖고 기반 구축에 나섰다. 권선주 행장은 지난 23일 간담회에서 직접 “은행 자회사 형태로 (인터넷 전문은행이) 출발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은행은 내년부터 스마트폰으로 모든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올해 1월과 8월 각각 출시한 ‘스마트폰 신용대출’ ‘스마트폰 전세론’에 이어 내년 초 ‘스마트폰 아파트론’을 선보인다. 이에 맞춰 지난 8일 핀테크 사업부를 신설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KB국민은행도 핀테크를 전담하는 독자 부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내년 조직 개편을 할 예정이다.

 카드사 행보도 분주하다. 신한·삼성·현대카드 등은 별도의 인증 절차 없이 아이디와 비밀번호만으로 간편하게 결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원클릭’ 서비스를 29일 실시했다.

 하지만 국내 금융권의 핀테크 공략은 해외에 비해 느린 편이다. 미국 페이팔과 중국 알리페이로 대표되는 지급결제 부문은 국제 핀테크 시장에서 이미 구세대 산업으로 분류된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6년 전만 해도 전 세계 핀테크 투자금의 70%가 지급결제에 집중됐지만 지난해 그 비중은 30%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해 29억7000만 달러(약 3조2600억원)에 달하는 전 세계 핀테크 투자액 가운데 86%가 지급결제가 아닌 금융 소프트웨어 개발, 금융정보 분석, 금융거래 기반 구축 등에 고루 투자됐다. 국내 금융회사가 부라부랴 지급결제 투자를 서두르고 있지만 세계 핀테크 산업은 벌써 ‘금융사 없는 금융거래’로 나아가는 중이다.

 뒤늦게 추격에 나선 국내 금융회사를 두고 전문가들은 기초부터 다시 다져야 한다고 얘기한다. 개인정보 유출과 스미싱, 해킹 사고로 국내 금융사의 보안 구조에 대한 소비자 불신은 크다. 이부터 해소하는 게 우선이란 지적이다. 김영린 금융보안연구원장은 “핀테크가 가장 발달한 미국 상황을 보면 사고 발생 후 어디서 책임질지 명확하게 설정돼 있다는 특징이 있다”며 “핀테크 육성을 위해 민·관이 해야할 일이 권역별 규제 장벽을 허무는 것을 비롯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보안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조현숙·박유미 기자

◆핀테크(Fintech)=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 영어 글자를 조합해 만든 말. 정보기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차원의 금융거래 서비스를 의미한다. 결제부터 자산 관리까지 전 금융 부문을 망라한다. 은행이나 카드·증권사 같은 금융회사를 아예 빼놓고 기업과 고객을 이어주는 핀테크 회사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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