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 읽기] 도쿄발 120엔의 쓰나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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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호 18면

미국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이 12월 26일 120.46엔을 기록했다. 2007년 6월 이후 7년6개월 만에 최고치다. 1976년 ‘브레턴우즈(The Bretton Woods) 체제’가 붕괴한 이후 지난 40여년 동안 엔화 환율은 대체로 다섯 번의 강세기(환율 하락)와 다섯 번의 약세기(환율 상승)가 반복되어 왔다. <표 참조>

과거 엔화가 약세가 될 때에는 아시아 금융위기였던 95~98년(60엔)을 제외하면 대체로 30개월 동안 20~30엔 정도 올랐다. 38엔(88년), 32엔(2000년) 그리고 20엔(2005년)이 그랬다. 그런 역사적 추세로 보면 2012년 10월 이후 지금까지 약 44엔 오른 것은 다소 과도한 면이 있다. 많은 외환전문가가 엔화 환율이 120엔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아베, 전 세계로 엔화 약세 전파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첫째, 올 들어 10월까지 일본 무역수지 적자가 사상 최대인 11조 엔(약 1000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둘째, 아베 정부와 중앙은행이 엔화 약세를 단단히 벼르고 있다. 제한 없는 양적완화와 더불어 대대적인 엔화 약세를 통해 전 세계로 ‘자본특공대’를 급파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엔화 약세를 벼른 적이 과거에는 없었다. 셋째로는 엔화 약세, 즉 달러 강세가 국익에 반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묵인’이 도사리고 있다. 조만간 연방기금금리(Federal Funds Rate)를 올리겠다는 생각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엔화 환율이 달러당 130엔, 혹은 그 이상으로 올라가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95년 초 고베 대지진 이후 엔화 환율은 80엔대에서 143엔까지 치솟은 적이 있다.

문제는 76년 이후 다섯 번의 엔화 약세가 예외 없이 한국 경제, 특히 수출에 치명적인 타격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88년 1월 이후 28개월 동안 엔화 가치는 31%가량 떨어졌는데 그동안 수출증가율은 88년의 28.9%에서 89년과 90년 각각 2.7%와 3.5%로 추락했고 경제성장률도 11.6%에서 6.8%로 하락했다. 95년의 엔화 약세도 마찬가지였다. 엔화는 73% 정도 약세였는데 수출증가율은 95년 30% 증가세에서 96년과 97년 각각 4.1%와 6.4%로 급격히 둔화했고 경제성장률도 8.9%에서 -5.7%로 추락한 적이 있다. 세 번째 엔화 약세는 2000년 1월부터 2002년 2월까지 32% 진행됐는데 한국의 수출은 2000년 24.6% 증가에서 2001년 -13.6%로 위축됐고 경제성장률도 8.9%에서 4.5%로 급락했다. 네 번째 엔화 약세는 2005년 1월부터 30개월간 진행됐는데 한국의 수출증가율이 2004년 31.4% 증가에서 2005년 11.4%로 악화했고 경제성장률은 4.9%에서 3.9%로 하락한 적이 있다.

엔화 약세가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대개 2년 정도의 시차를 지나서 나타난다. 시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일본 수출업자들이 유리한 환율 때문에 달러표시 수출가격을 내리는 시간 가격이 내린 일본 제품으로 수입계약을 전환하는 시간 계약에 따라 생산하고 수출하는 시간 때문이다.

엔화 약세 영향 2년 시차 지나 나타나
이 모든 시차 요인이 결합해 통상 엔화 환율 변동 이후 2년 정도 지나야 한국 수출에 가시적인 영향이 나타난다. 따라서 2012년 말 시작된 엔저의 한국 수출 타격 효과는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다고 봐야 한다. 2012년 말 아베 정부 집권 이후 지금까지 57%의 엔화 약세라면 규모 8에 가까운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강진’이다. 한국 수출과 경제 위기는 필연적이다. 한국은 엔저 ‘쓰나미’에 대한 대비가 철저히 돼 있을까? 적어도 정부가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방향(안)’에는 보이지 않는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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