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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길 걸어서 두 시간 차로 못 가는 순수의 땅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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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구미라고 불리는 오지 마을이 있다. 얼마 전 ‘인간극장’이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온 장윤일(69)씨 가족이 사는 산골이 바로 그 비수구미다. 강원도 화천에서도 최전방 파로호변에 자리 잡고 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오지 마을로 통하는 곳이지만, 내가 이 외진 마을과 인연이 맺은 건 벌써 15년이 넘는다.

1990년대만 해도 낚시꾼 몇몇을 빼고 비수구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워낙 깊은 산속에 묻혀 있어서였다. 낚시꾼한테나 비수구미라는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던 시절, 손님 중에 낚시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참 좋은 곳이 있다며 비수구미를 소개했다.

직접 가서 보니 비수구미는 육지 속의 섬마을이었다. 자동차를 타고 비수구미에 들어가는 방법은 없었다. 평화의댐 아래에서 배를 타고 북한강을 질러서 가거나, 해산터널에서 두 시간 이상 계곡을 따라 걸어서 들어가야 했다. 자연 그대로의 마을 전경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마
을까지 걸어 내려가는 길은 봄여름에는 들꽃,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눈꽃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트레킹 코스이기도 했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 파로호 검푸른 물이 있고, 물가에 주민들이 사는 네 가구가 띄엄띄엄 놓여있었다. 그 네 가구 중에 장윤일씨 집이 있었다. 이 집 무쇠솥에서 지은 옛날 밥은 먹어 본 사람만 아는 감동적인 맛이었다.

나는 해산터널을 지나자마자 버스에서 내려 마을까지 걸어내려간 뒤 장윤일씨 집에서 점심을 먹고 놀다가 모터보트를 타고 평화의댐까지 나오는 여정을 짰고, 1998년 내가 구상한 비수구미 마을여행 상품이 중앙일보에 크게 소개되었다. 비수구미는 단박에 유명해졌다. 그러나 나는 전국에서 정말 얼마 안 남은 순수의 땅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철이 바뀔 때마다 손님을 모시고 이 외진 마을을 들어가지만, 버스 한 대
이상은 모집하지 않는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이 찾아가면 이 귀한 풍경을 망칠 수도 있어서다. 다행히 비수구미 일대는 자연휴식년제가 실시되고 있어 출입이 제한된다. 주민 허가가 있어야 마을에 들어갈 수 있다. 자연휴식년제가 풀려도 나는 비수구미 마을을 최대한 아낄 작정 이다.

처음 손님을 모시고 비수구미 마을에 갔던 날이 생각난다. 장윤일씨 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반찬으로 멸치조림이 나왔다. 손님들이 강원도 심심산골에서 무슨 멸치냐며 반찬에 손도 대지 않았다. 식사가 끝날 무렵 아주머니가 조용히 나를 불러 왜 저 귀한 걸 안 먹느냐고 물었다. 멸치가 아니라 빙어였다. 겨울에 파로호에서 잡았던 빙어를 얼려 두었다가 조금씩 내놓은 것이었다. 밥을 먹고 밖으로 나갔던 손님들이 부리나케 돌아와
허겁지겁 빙어조림을 집어 먹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8월 4, 17, 24일 출발. 1인4만8000원.

이종승 승우여행사 대표
올해 칠순을 맞은 국내 최고령 여행 가이드. 40년 넘게 국내 여행만 고집하고 있다. swtour.co.kr 02-720-8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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