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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드라이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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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토요일 하오3시 경부고속도로로 톨게이트-.
서울을 빠져나가는 자동차의 행렬이 6차선 도로를 꽉 메워 제3한강교까지 이어진다.
고속버스·화물트럭은 홍수에 잠긴 들판의 가로수처럼 눈에 띌 뿐 온통 승용차의 물결이다.
포니 브리사 맵시 제미니 등 국산 소형차 사이사이 레코드 마크포 코티나…중형차와 푸조 벤츠 크라운 포드 등 육중한 대형 외제차들이 위풍을 뽐낸다.
오너 드라이브-.
지난 연말 호텔서 열린 고교동창들의 망년회에 참석했던 모회사부장 박광수 씨(42·서울 진청동)는 마이카 쇼크로 새해 들어 차를 샀다.
그날 모인 12명 가운데 차가 없는 사람은 모 부처 과장인 공무원 1명과 박씨 등 4명뿐. 차를 가진 8명 가운데 6명은 제손 운전」이었다.
『이 사람아, 나이4O에 자가용이 없으면 이제 애들한테 체신이 안 선다네. 자기가 운전을 하면 돈도 별로 들 것 없어. 자네가 운전을 못하겠으면 마누라를 시키라구…』마이카는 이제 중산층에 그리 힘겨운 일은 아니다. 새차를 구입할 경우 4백20만∼4백80만 원까지 들지만 중고차는 1백만∼2백만 원. 중고차 시장에는 20만∼30만 원 짜리 까지 흔하다. 유지비용도 △기름 값 10만원 내외 △차량세 3개월마다 7만8천 원 △종합보험료 6개월마다 9만원 △세차·수리 등 기타비용 3만원으로 한달14만∼16만원이면 된다.

<이동사무실로도>
일단 목돈을 마련해 차를 사고 제손 운전을 한다면 웬만한 샐러리맨도 마이카대열에 낄 수가 있게 됐다.
오퍼상을 하는 최대권 씨(38·서울 회현동)는 3년 전부터 직접 차를 몰며 뛰고 있다.
업체방문상담· 바이어안내· 관청출입 등「기동력」을 무엇보다 필요로 하는 직업이어서 차는 필수 불가결한 조건.
최씨는 운전사를 고용할 경우 드는 경비와 신경 쓰는 부담을 제손 운전으로 덜고 기동성이 한결 높아 마음 꼇 뛰고 있다고 했다.
서울 묵동 I주산학원 원장 고병수씨 (30) 는 매일아침 동네 골목을 누비며 학원수강생들을 실어 나른다.
『학원도 경쟁이 심해 수송수단이 없으면 학생이 안 온다』 는 것이다. 고씨의 12인승 봉고 차는 고씨에겐 생필품이다.
서울 명일동 K복덕방은 Y고교동창생 5명이 경영하는 동창기업. 5명이 모두 운전면허를 갖고 있다. 이들은 2대의 포니와 봉고 1대를 쉴새없이 굴리며 영업을 한다..
『이젠 집을 보러 갈 때도 차가 없으면 잘 안 가려고 해요. 아파트는 그래도 낫지만 일반주택이나 땅을 소개 할 때면 차 없이는 실제로 불가능합니다.』
대표 강희중 씨(33)는 최근 구입한 봉고 차를 이동복덕방으로 개조,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했다. 판촉요원과 고객이 동승해 현장답사를 한 다음 사무실까지 돌아올 필요 없이 차안에 마련된 탁자에 마주앉아 즉석에서 상담과 계약을 한다. 남보다 한 걸음 빠르지 않고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손 운전 바람은 권위가 존중되는 관가에도 불어닥쳤다. 정부가 지난해 4월부터 추진하고 있는 국장급 공무원 자가운전제도가 그것. 이미 부처마다 2∼4명씩이 자가 운전을 하고 있고 오는 4월부터는 전면 실시될 예정이다.
자가운전준비로 면허시험공부를 하는 공무원들이 요즘 운전교습장마다 줄을 잇고있다.

<여자가 4o%나 돼>
제손 운전이 처음 시작된 곳은 역시 기업체. 현대그룹이 78년 자가운전 제를 도입했다.
현재는 삼성·럭키·대우·코오롱 등 우수의 기업들이 전면 또는 부분적으로 채택, 기동성과 경비절감의 2중성과를 거두고 있다. 현대의 경우 차량유지 경비가 4O%이상 줄었다는 분석이다.
최근 들어 기업에서는 신입사원에 단체로 운전교육을 시키거나 해외근무 등 인사에 운전면허를 우선 요건으로 하고있다.
H그룹의 조경환씨(29)는 지난 해 특급해외근무지 인사발령 때 운전을 못해 동료에게 뺏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일요일이면 차를 빌어 이른바 「선데이 드라이브」교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시간당 실습비가 4천∼6천 원. 2개월 과정에 12만4천8백원으로 책정되어 있는 학원정규코스보다 오히려 빨리 배우고 돈도 적게 든다는 계산이다.
제손 운전 준비는 자영사업자나 회사원·공무원뿐만이 아니고 젊은 대학생·중년여성 층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서울 청담동 H자동차학원 사장 김기출씨(40)는 운전 교습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2O대 남녀대학생과 중년여성, 그리고 각 기업의 중견간부나 공무원 등으로 대별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전체의 40%가량이 여자라는 것이다.
매일 5백∼7백여 명이 면허를 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한남동 면허시험장에도 응시자의 3O%는 여성. 남녀대학생들은 결혼·유학·취직후의 활용 등 동기로 운전을 배우는 반면 중년여성들은 차를 가진 가정의 주부가 자가용 「활용」을 위해 배우는 경우가 많다.
치안본부 집계에 따르면 작년 한해 자가용승용차는 서울에서만 l만7천6백59대가 늘었는데 그중 67%에 해당하는 1만4백대가「제손 운전」이다. 전국적으로는 작년1월부터 10월까지 10개월 동안 2만3천8백59대의 자가용승용차가 늘어났다.
운전교습소가 늘어난 것도 제손 운전바람의 하나. 서울의 경우 78년11곳이었던 교습소가 현재는 42곳으로 4년만에 4배 가까이 늘었는데도 「만원」이다.

<제손 운전이 67%>
전국 2백53개 교습소에서 작년 한해 30만 명이 운전을 익혀 12만 명이 면허를 얻었으며 그중 절반 가까운 5만3천2백23명이 제손 운전으로 추정되는 2종 면허. 제손 운전의 증가는 교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초보 운전자가 지그재그로 달리거나 시동을 꺼뜨리고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도심의 장애물로 등장했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내 차량평균 유통 속도는 81년 시간당 28km에서 지난해엔 시간당 2Okm로 떨어졌다.
마이카 붐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 나라 자동차보급은 경제수준에 비해 오히려 낮은 편. 현재 72명당 1대다. 승용차만으로는 1백4O명당 1대로 미국의 1·9명당 1대, 일본의 5· 7명당 1대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 이제부터 뜀박질할 채비다.<문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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