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험·후지원대입…이대로 좋은가|"승복않는 패배자"양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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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입수험생들은 14일 대학별로 모여 면접고사를 치르고 21일이면 그 동안 고심했던 선택의 결과를 통보받게 된다. 전국 62개대학과 11개 교육대등 전기대학지원자 42만6천여명중 합격통지서를 받는 수험생은 17만 3천여명. 나머지 25만여명은 탈락이라는 쓴잔을 들게된다.
대학입시는 선발시험이다. 반드시 합격의 영광과 탈락의 고통은 따르게 마련이다. 다만 얼마나 타당한 기준으로 합격자를 선발하고 교육적인 방법으로 넘치는 인원을 잘라내느냐는 문제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현행 대입제도는 어떤가. 한마디로「승복하지 못하는 패배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 교육계의 지적이다. 모두가 실패의 원인을 실력이 모자랐다고 보기보다는 눈치나 도박에 약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얻어놓은 점수로 대학과 학과를 잘 고르기만 했으면 합격할 수 있었는데 잘못 짚어 낙방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점수에 맞춰 대학과 학과를 고르게 하고 그것만으로 합격과 불합격을 판정하는 현행제도는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의 경우 학력고사 2백50점을 얻은 수험생이 연대에서 예상합격선이 높은 경영학과를 피해 행정학과에 지원했다가 낙방했다. 행정학과 합격선은 2백55점이었다. 반대로 경영학과는 2백31점.
이번 전형 결과는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런 현상이 고득점대에까지 번져 더욱 확산될 것으로 일선 교사들은 보고 있다. 수험생들의 눈치작전이 극에 달했던 12일의 움직임을 지켜본 예상이다.
2백70점대이상 고득점 수험생들 가운데 상당수는 서울대·연대·고대·서강대사이에서 수시로 발표되는 원서접수상황을 들으며 눈치를 살피다 지원율이 낮은 대학과 학과에 무더기로 원서를 냈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경쟁이 치열한 학과에 원서를 내고만 꼴이 됐다.
이번 전형에서 서울대를 비롯, 이들 4개명문대에서만 숫자상으로 2만여명이 떨어지게 돼 있다. 이들은 그밖의 어느 대학에나 합격할 수 있는 2백70점대 이상의 우수집단이다.
따라서 자신의 낙방에 관해 현행제도에 의한 선택의 잘못은 인정하겠지만, 결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반성은 하지 않는다.
이는 대부분의 합격자도 마찬가지다. 물론 3백15점이상을 따냈던 최상위권에서는 거리낌없이 진로를 선택했겠지만, 대부분은 점수와 학과를 맞추느라 적성보다는 합격을 앞세우게 된다. 합격은 했지만 자신보다 학력고사점수가 낮은 동료 수험생이 평소 부러워하던 인기학과에 합격한 반면, 자신은 훨씬 좋은 점수로 이론 바 하위권에 속하는 학과에 들어가게 됐을 때 결과적으로 이에 승복 않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경쟁에서나 승자가 있고 패자도 있다. 패배는 비극이다. 승복할 수 없는 패배는 더 큰비극이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 초기에 치러지는 대학 입학경쟁이 해마다 20만∼30만명의 대부분을 결과에 승복할 수 없는 패배자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현행제도가 갖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이다.
결과를 놓고 이를 자기발전의 토대로 삼을때만 입시경쟁도 교육적인 뜻을 지닐 수 있다. 이는 또 패배자가 그 원인을 자신으로부터 찾아낼 수 있을때만 가능하다.
모두가 점수와 맞추느라 지원대학이나 학과선택을 서로 예측할 수 없고, 합격자와 불합격자의 점수가 알려지는 현행제도에서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결과를 수험생들이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재수생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현행제도 실시이후 재수생이 오히려 늘어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권순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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