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채 3백69억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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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인들이 몰려온다』느니 『가장 모범적인 개도국』 이니 하는 과찬의 말들이 너무 많아 우리를 어리둥절케 하더니 이젠 민망한 소리가 간혹 들려 우리를 당혹케 한다.
빚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몇 년 전 한참 드날릴 땐 대만·싱가포르·홍콩과 선두를 다투었으나 요즘은 어느새 브라질·아르헨티나·멕시코 등과 같은 열이 돼버렸다.
과거의 라이벌이던 대만·싱가포르 등과는 좀체로 비교되지 않는다.
77년께 우리는 무척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외국매스컴 등에서 먼저 칭찬을 해주는 바람에 『아, 이젠 우리도 자신을 가져도 되겠구나』 하고 안도했는데 이젠 안에선 안도하고 있는데 밖에서 먼저 걱정들이다.
외국 매스컴 등에서 한국의 외채문제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하반기부터다.
특히 엄살 심한 일본신문들이 더하다.
빚 많은 나라로서 브라질·아르헨티나· 멕시코 등과 같이 한국을 자주 등장시키는걸 보면 별로 좋은 기분이 아니다.
40억 달러 경협이 걸려 있어 더욱 그렇다. 금년 들어선 더욱 노골적이어서 일본경제신문은 「한국에 금융위기의 우려가 있음을 OECD가 경고했다」는 것을 1면 톱으로까지 보도했다.
외채가 3백80억 달러나 되어 브라질·멕시코·아르헨티나와 더불어 장차 빚을 못 갚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정부당국의 신속한 확인결과 경고한 사실이 없다고 하니 더 이상 다행은 없으나 그것이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씁쓰름하다.
혹시 오해가 있을지 모르니 한국의 외채문제에 대해 좀더 적극적이고 설득력 있는 해명이 필요하겠다. 국내에서야 걱정 없다면 걱정 없는 것으로 믿지만 외국에선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쪽은 의심이 매우 많아 조금만 미심쩍어도 몸을 사린다.
1차 오일쇼크 때 한국이 그야말로 부도직전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일본으로부터 무척 괄시를 받은 경험이 있지 않은가.
당시 IMF총회 참석 차 워싱턴에 갔던 한국재무장관이 일본 장상으로부터 얼마나 섭섭한 대접을 받았던지 한 때 일본은행들의 한국진출을 막아버린 일도 있다. 다행히 미국은행단의 긴급융자로 고비는 넘기기는 했으나 그때도 어떤 미국은행은 빚 빨리 갚으라는 독촉을 성화 같이 했다.
개인도 마찬가지지만 나라 사이에도 빚 많으면 서러운 법이다.
한국의 외채문제가 자주 거론된다는 사실 자체가 민망스럽다.
빚이 많아도 상환능력만 있으면 별 걱정할 게 없지만 워낙 덩어리가 큰데다가 국제 금융정세도 혼미하고 보면 바짝 조심하는 게 좋다. 너무 걱정을 하는 것도 안 좋으나 너무 낙관하는 것은 더 안 좋다. 올림픽관광단이니 대학생연수니 단체관광 여행이니 하는 것도 모두 지나친 낙관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국의 외채가 3백80억 달러나 된다는 것은 고장이고 3백60억 달러쯤 된다. 장· 단기 합쳐서다.
우리 나라 GNP가 6백50억 달러, 수출이 2백30억 달러쯤 되니 적다고는 할 수 없다.
1년의 줄다리기 끝에 이번 타결된 한일 경협 천억 달러도 우리나라외채의 11%정도다.
따라서 OECD가 경고를 했느냐 안 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엉뚱한 소리가 나오게 끔 된 처지가 안 좋은 것이다.
특히 일본 쪽에서 커다랗게 보도되는데 대해선 더욱 착잡하고 불쾌하기까지 하다.
경협 협상 테이블에서도 저쪽에서 쩨쩨하게 나오면 『호혜적인 견지에서 하자는 것인데 그쪽 사정이 그토록 어렵다니 없었던 걸로 하고, 인류평화문제나 이야기 합시다』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후련할까.
『억울하면 출세하라』 는 말도 있는데 우리도 서럽지 않으려면 아쉬운 소리는 안 해도 되는 처지로 빨리 올라서야겠다. <최우석 부국장 겸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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