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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식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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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월=잡채· 동태찌개, 화=카레라이스·북어포무침, 수=조개매운탕· 달걀 야채 말이….」
회사원 성영목 씨(29· 서울 사당동 영아아파트5동)집 식탁 옆에 붙여진 주문식품의 저녁메뉴.
냉장고 속에는 갓 배달된 1주일 분의 배추김치· 총각김치와 마늘장아찌·창란젓·깻잎 등 밑반찬이 가득하다.
성씨는 회사에 출근해서도 점심걱정을 않는다. 판에 박힌 듯한 외식에 진력이 나면 회사 구내식당에서 주문 도시락을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K회사 총무부장 박모씨(41)는 사원망년회를 상차림 출장파티제로 치렀다.
72년부터 서울일부지역에 보급되기 시작한 공장김치는 이미 일반화됐고 이제는 복잡한 밑반찬부터 요리까지를 망라한 음식상을 배달하는 주문식품 요리 대행 업이 점차 활기를 띠면서 생활 속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기본 메뉴 24가지>
지난해 8월 서울여의도 아파트단지에 『식단 짜기·장보기 대신해줍니다』라는 이색 광고전단이 뿌려졌다고 식구 수와 취향에 따라 요일별로 다른 음식상을 만들어 전화주문에 따라 배달해 준다는 것.
아파트촌의 젊은 맞벌이부부와 독신자들을 주로 겨냥했던 D사(대표 유근총·65·서울서초동)의 이색 아이디어는 적중, 불과 5개월만에 3백여 가구의 단골고객을 잡고 있다. 영업설비는 음식공장과 냉동시설이 완비된 3대의 픽업이 전부.
기본 메뉴는 갈비구이·도미전골·낙지볶음·육채전골 등 24가지로 한끼 배달가격은 3인분을 기준 해 3천4백 원을 받는다.
또 기본메뉴 외에도 1주일 단위로 기호 식만 따로 주문하는 디너 서비스 메뉴도 갖추고 있다. D사처럼 디너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여의도 S사 등 서울시내에 3∼4개소.
8개월 째 디너서비스를 제공받는다는 주부 정태정씨(40·서울방배동888) 는 『영양사가 필요한 칼로리를 계산해서 식단을 짜기 때문에 균형 있는 식사가 이뤄지며 값도 시장에서 일일이 재료를 구입하는 것보다 20%정도, 싼 것 같다』 고 말했다.
주문식품의 원조격은 72년11월 문을 연 J사(대표 박선희·52·여·서울 원효로) 공장김치.
공장김치는 처음에는 노력과 정성이 담긴 가정김치의 전통세 (세) 에 밀려 환영을 받지 못했다. 더구나 비위생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은 가정확대 보급에 제동을 걸었다.

<시장 값보다 20%싸>
그러나 해가 거듭되면서 맛을 10여종으로 다양하게 해 구미에 맞는 김치가 나오게되자 이제는 서울시내에만도 4천여 가구가 애용하고 있다.
애용자는 주로 여의도·압구정동·대치동·서초동 등 저장이 어려운 아파트 주민과 시간에 쫓기는 맞벌이 부부들.
J사는 하루 1만5천kg의 김장을 주문 생산하고 있다. 이중 7O%가 배추김치이고 나머지는 총각김치와 깍두기.
J사 기획실장 이재성씨 (51)는 『고춧가루를 많이 넣어달라, 젓갈은 멸치젓, 또는 새우젓, 해산물·굴 등 까다로운 주문에 따라 김치를 알맞게 익혀 매일 또는 1주일, 열흘단위로10kg씩 가정에 배달해 주고있어 사용 층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고 했다.
3년 전부터 주문 김치를 애용하는 주부 박선자 씨 (38· 서울 반포동 반포아파트 27동) 는 『처음엔 호기심에서 주문했으나 이제는 원하는 대로 맛을 조절해주고 있어 여간 편리하지 않다』며 『올해도 4인 가족 기준 50kg의 공장김치를 주문했다』 고 말했다.
가정외에도 공장김치의 대량수요처는 대기업체와 공장·병원·학교·관공서· 단체 등의 구내식당. 백화점과 슈퍼 등에서 팔고있는 김치도 대부분 경인지역에 산재해있는 30여 개 김치공장에서 공급되고있다. 「김치의 공업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가격은 포기김치 2kg (배추1포기)에 1천4백여 원, 5인 가족이 겨울 3개월 분(1백kg)은 6만∼6만7천원 선이다.
최근에는 공장김치가 캔으로 포장돼 중동과 일본·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지난해 J사의 수출실적은 21만kg (1만4천 달러) .
요즘은 김치의 인스턴트 화에 발맞추어 양념과 젓갈류 등을 분말로 만든 김치 속을 개발해 김치 속에 물만 부으면 즉석에서 김치를 담글 수 있다.
H유통에서는 아예 절인 배추만을 가정에 공급해주기도 한다.
직장인들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있는 또 다른 주문식품은 주문도시락과 출장파티 상차림.

<공업화 김치 수출>
특히 파티용 음식은 각종 모임이나 약혼식·회갑연·동창회 등에 이용되다가 지난 연말엔 망년회로 피크를 이뤘다.
회사원 안모 씨(35·서울 화곡동)는 상사로부터 부 망년회 책임을 맡아 궁리 끝에 출장파티전문인 H개발연구회에 50명분을 의뢰했다.
수소문 끝에 H개발의 전화를 알아내 손님 수와 망년회 예산·장소를 알려주었다. 비용은 1인당 7천 원에 35만원. 망년회 당일까지 조마조마했던 안씨는 예정시간보다 1시간 빨리 번듯한 식탁이 준비됐고 장식용 꽃과 촛불까지 장식돼 상사로부터 『완벽하게 해냈다』 는 칭찬을 들었다.
이렇듯 주문식품은 날로 자리를 굳혀가지만 점차 개성을 잃고 획일화되어 가는 현대사회에서 어머니의 정성이 손끝마디마디에 묻혀 버무려지는 가정 고유의 미각이 퇴색해간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도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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