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안전처 장관, 대통령과 총리에 휴대전화 핫라인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인용(62·사진) 국민안전처 장관의 휴대전화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홍원 국무총리의 휴대전화 번호가 과연 입력돼 있을까. 박 장관은 취임 1개월 동안 박대통령에게 직보를 몇번이나 했을까.

세월호 참사 이후 대형 재난 재발방지 대책 차원에서 엄청난 세금을 들여 안전행정부를 쪼갰고 그에 따라 국민안전처와 인사혁신처가 지난달 19일 출범했다. 박 장관은 취임 1개월을 맞아 19일 출입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기자는 박 장관에게 "휴대전화에 박 대통령의 휴대전화 번호가 입력돼 있느냐"고 물었다.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에 따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본부장인 박 장관과 국민안전을 포함해 국정의 최종 책임자인 박 대통령과의 사이에 '안전 사고 핫라인(hotline)'의 존재 자체가 기자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박 장관은 "그건 가르쳐 드릴 수 없다"고 의외의 대답을 했다. 국회 청문회에서부터 줄곧 "나도 사람이라 잘못은 할 수 있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고 강조해온 박장관이다. 그는 "나는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눈을 피하지 않는다"고 강조해왔다. 박 대통령의 휴대전화 번호를 묻는 질문에 대답하면서 박 장관은 기자의 눈을 잠시 피했다.

중대본부장인 박 장관이 대통령의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지, 알고 있는 지는 국민으로서는 궁금해 할 수 있는 대목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박 장관은 "내가 (대통령의 휴대전화를) 아는가 모르는가, 번호를 갖고 있는 지 없는 지 그 자체를 가르쳐 드릴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너무 뜻밖의 대답에 두 번 놀랐다. 그래서 "안 갖고 계시군요"라고 반문하자 박 장관은 "알아서 (판단) 하시라"고 말했다.

기자는 이어 "그러면 정홍원 총리의 휴대전화번호는 입력돼 있는가"라고 물었다. 국민안전처는 국무총리실 소속 기관이다. 재난법에 따라 특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박 장관을 대신해 총리가 중대본부장을 맡게 된다. 박 장관은 "그것도 말씀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기자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자, 박 장관은 "그러나 원할 때는 (연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장관과의 문답을 종합하면 현재 박 장관의 휴대전화에는 박 대통령과 정 총리의 휴대전화 번호가 입력돼 있지 않지만 필요하면 연락은 취할 수 있다는 것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물론 최종 진실은 박 장관만 알고 있다.

박 장관이 곤란해지라고 일부러 이런 질문을 한 것이 아니다.대형 재난이 발생할 경우 골든타임(golden time)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다. 신속한 보고와 대응 조치가 이뤄지면 100명이 희생될 큰 재난의 피해도 10명 이하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자 상식에 속한다. 죽을 수도 있는 국민을 신속하게 대처하면 살릴 수도 있다. 사망과 실종을 포함해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4월16일) 때 우리 사회가 뼈저리게 확인한 교훈이기도 하다.

중대본부장인 국민안전처 장관이 재난대응을 포함해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권한을 대행하는 총리와 긴밀한 연락을 취할 핫라인이 구축돼 있느냐 없느냐는 그래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날 기자는 박 장관에게 취임 이후 대통령에게 몇 번 대면보고 기회를 가졌는지 물었다. 박 장관은 "국무회의에도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독대보고는 없었다는 말이다.국회 보고 일정이 중복됐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해명했다.

박 장관이 취임한지 12일만인 이달 1일 러시아 인근 베링해에서 원양어선 오룡호가 침몰해 탑승자 60명중 7명만 구조되고 나머지는 사망 또는 실종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 와중에도 박 장관은 대통령에게 대면보고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얘기다.

하기야 박 장관을 탓할 일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박 장관이 박 대통령의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고 있어도 핫라인은 불통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실제로 정의화 국회의장은 최근 박 대통령의 휴대전화에 전화를 걸어도 전화가 꺼져 있어 핫라인 연락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 의장은 지난 15일 정홍원 총리를 만나 "(대통령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뼈 있는 지적을 했다.

재난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재난의 현장 총책임자인 국민안전처 장관과 국정의 최고책임자 대통령 사이에 지금이라도 핫라인이 개설되고 언제든지 통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모든 국민의 바람일 것이다.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