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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 「중앙문예」단편소설 당선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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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네 형의 산소를 이장(이장)해야쓰것다….』
작은아버지의 목소리가 수화기 저쪽에서 가물가물 들려왔다.
나는 이제와서 무슨 뚱딴지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 일까하는 의구심이 일어나 작은아버지의 다음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바짝긴장했다.
『듣고있는 거여?』
『예, 말씀하세요!』
『지난여름에 쏟아진 소낙비에 산소가 말이 아니여…. 그런 비가 한번만 더오면 산소가 떠내려갈지도 모르닝께 소홀히 듣지말고 일간 내려오라 그 말이여….』
『‥‥‥』
『자네형제 일이니까 나야 몰라라하면 그만이것지만 사람의 도리가 그런게 아닌 것 같으니 어쩌나? 산소를 잘쓰지 않으면 집안에 우환이 따른다는 옛말도있고…산소를 저대로 두고는내가 쉬이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구먼…내말 들리는거여?』
『예…!』
나는 마지못해 볼멘소리로 대답했다.
이 늦은 시각에 하필이면 삭아버린 뼛조각냄새가 풍기는 전화를 하는 작은아버지가 몹시 언짢았다. 어릴때부터 산소에 물이 괴었다거나 집안에 우환이 많아서 친척들이 산소를 이장하는것을 심심찮게 보아온 까닭으로 산소를 이장하는 일이 그렇게 생경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낮도깨비모양 느닷없이 형의 산소를 이장해야겠다는 작은아버지의 전화는 어쩐지 꺼림칙하고 떨떠름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와서 이런 얘기를 하는것이 도리야 아니제…하지만 그동안 오죽 많은 세월이 흐른거여? 모든것 다잊고 산소를 이장하기로 한거여. 그러니 일간 짬을 내서 내려오라 그말이구먼…』
『예』
『모레가 반공일(반공일)인데 내려올 수 있을라나?』
『예』
『그려, 그럼 아주 말난 김에 해버리더라고!』
『알겠읍니다』
고희(고희)를 넘긴 노인답지않게 카랑카랑한 작은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쩐지 작은아버지의 전화에서 찐득거리는 죽음의 냄새가 느껴진 것이다.
『막차로 올기여?』
『예.』
『그럼 애들시켜서 정거장으로 마중을 보낼테니 그리알어?』
『예, 그러면 토요일날밤에 뵙겠읍니다…』
작은아버지가 다른말을 꺼내는것을 두려워하듯이 나는 서둘러 인사를 하고 수화기를 놓았다.
창밖엔 철늦은 가을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새카만 먹빛어둠속을 헤집으며 날아온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들겨댔다. 나는 옷깃을 파고드는 썰렁한 한기를 느끼며 담배를 피워물었다. 웬일인지 형의 얼굴을 똑바로 기억할 수가 없었다. 이미 삼십여년이나 흙속에 묻혀있는 형이긴 했으나 형의 얼굴은 흙속에 묻힌 시신보다도 더욱 두터운 망각속에 묻혀있었던 것이다.
『산소를 이장하신대요?』
아내가 선하품을 깨물며 거실로 나왔다. 빛바랜 잠옷의 옷섶을 여미고 한손으로는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아내의 그동작에는 어딘가 모르게 생활의 권태와 같은 짜증스러움이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비때문인지 아내의 말투는 그다지 짜증스럽지 않았다.
『아직도 비가 오네요…』
아내가 졸음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멍하니 성긴 빗발이 날리는 창 밖을 응시했다. 바람에 날려온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들기고 어둠속으로 흩어져갔다.
『산소를 이장하신대요?』
『응』
『어른들은 공연히 산소만 가지고 야단이군요. 산소를 이장하면 돈벼락이라도 떨어지는지…』
아내의 시큰둥해하는 말마따나 산소를 이장하는 일이 썩 마음내키는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작은아버지가 형의 산소를 이장하기로 한 것은 충분히 그만한 까닭이 있을것 같았다. 나는 막연히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모래 내려갈 참예요?』
『응』
『꼭 가야되요?』
『형님 산소를 이장한다니까….』
『왜 형님산소만 이장해요?』
『글쎄….』
『이이는…!』
아내가 눈을 흘기며 내 잠옷 하의로 손을 가져갔다. 아내는 그손을 기민하게 움직이며 어깨를 기대왔다.
『형님산소가 아니라 당신형수 산소예요. 6·25때 빨갱이 노릇했다는 당신 형수 말예요….』
비로소 나는 둔탁한 흉기로 머리를 호되게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빨갱이형수…그래, 형의 산소가 아니라 형수의 산소일 것이다. 그 형수는 빨갱이 노릇을 했기때문에 마을장정들에게 살해된 뒤에도 선영에 묻힐 수가 없었다. 시신마저도 온전하게 땅에 묻게 할 수 없다는 윤주사의 둘째아들 무릎에,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가 매달려 애걸복걸하여 겨우 형수의 시신을 얻어왔으나 작은아버지가 빨갱이를 며느리로 생각하느냐, 집안망친 빨갱이년을 선영에 묻으면 살인날줄 알라고 펄펄뛰는 바람에 마을에서도 십리나 떨어진 야산에 구덩이를 파고 묻었었다.
언젠가 아버지의 산소에 성묘를 하러갔다가 문득 생각이나서 형수의 산소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형수의 산소는 돌보는 이가 없어서 봉분이 무너지고 잡초가 무성해 까닭없이 가슴이 저렸었다.
이제와서 형수의 산소를 이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시다니…이미 연로(연로)할대로 연로하여 이제는 가족들이 돌아가실 날짜만 손꼽고 있을 작은아버지다운 생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다니던 공립소학교에 예쁜 여자 선생님이 부임해왔다.
나는 거의 시오리나 되는 산길을 걸어서 통학했는데 그길은 재(령)를 세개나 넘어야하는 험한 산길이었다. 그러나 뱀밭골을 지나 신작로로 통학하자면 이심리길이 훨씬 넘었으므로 나는 소학교를 마칠때까지 줄곧 그길을 이용하여 통학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마을은 벽지에 가까운 두메산골이어서 멧돼지나 노루같은 산짐승이 심심치않게 마을까지 내려와 가축을 물어가거나 논밭을 엉망으로 만들기 일쑤여서 힘깨나 쓰는 장정들이 산짐승을 잡으러 몰려다니는 소동이 자주일어났다. 그래도 산간지방인 그 고장은 농토가 척박하지 않아 온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생업으로 삼고 대(대)를 물렸다. 아버지 역시 궁벽한 그마을에서 평범한 농사꾼으로 일생을 마쳤는데 내가 태어날 무렵만해도 비옥한 그땅이 잎담배경작지로 각광을 받아 마을은 뜻밖의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그덕택에 형은 전문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고 시집간 누나들도 당시로서는 드물게 중학교를 마쳤다.
내가 우리학교에 부임해온 그선생님을 처음본 것은 어느초여름의 아침이었다. 우리의 담임선생님이 폐병으로 학교를 사직한 뒤에 우리는 거의한달동안을 선생님없이 공부를 했고 선생님이없는 교실의 분위기는 자연 산만하고 엉망일수밖에 없었다. 면(면)소재지에 하나뿐인 소학교여서 일본인아이들과 함께 공부한 우리조선인아이들까지 선생님이 없는 교실의 자유를 마음껏 향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자유의 종말은 서둘러오고 말았다. 수업을 시작하는 종이 울렸는데도 책과 공책조차 꺼내지 않고 잡다한 얘기꽃을 피우던 우리들 앞에 교장선생님이 나타난 것이다. 그뒤에는 교장선생님의 그림자이기나 하듯이 소리없이 따라들어온 젊은 여자가 서있었다. 오똑한 콧날과 버들같은 눈썹, 전혀 햇빛을 본일이 없는것처럼 하얀 얼굴에서 아름다운 한쌍의 눈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얼굴이 예쁜탓으로 조금은 쌀쌀하고 차가와 보이는 인상이었다.
『급장!』
우리가 여우에 홀린듯이 그여자를 바라보고 있을때 교장선생님이 칠판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예!』
급장인 도다도 넋이 나갔던지 깜짝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교실이 왜이렇게 소란스럽나?』
『죄송합니다!』
『새로오신 선생님께 인사드리도록 해라! 너희들 담임선생님이시다!』
아이들이 소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여자의 하얀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공연히 가슴이 뛰었다.
『기립!』
도다가 마침내 얼굴을 꼿꼿이 들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소란스럽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경례!』
도다가 다시 고함을 질렀다. 우리는 일제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앞으로 일년간 여러분과 함께 배우면서 공부하게 되었읍니다…』
그 여자는 웃지도 않고 고개만 까딱해 우리들의 인사를 받았다.
교장선생님이 새로오신 선생님말씀 잘듣고 공부 열심히하여 훌륭한 황국신민(황국신민)이 되라는 훈계를 하고 교실을 나가자 그여자는 비로소 우리에게 앉으라고 말했다. 우리는 소란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책상이 움직이는 소리,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조용해지자 그여자는 자기의 이름을 칠판에 큼직하게 썼다. 진영자라는 이름이었다.
『모두 함께 읽어봐요!』
우리는 말잘듣는 학생이되어 큰소리로 그여자의 이름을 읽었다. 그여자는 좋아요,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여자는 눈앞의 나무만 보지말고 멀리있는 숲을 보자는 내용의 어려운 얘기로 첫시간을 메워나갔다. 역사의 짖궂은 장난에 희롱 당하지 말라, 역사는 바람과 같은 것이어서 언제나 불고싶은 곳으로 분다, 우리는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를 듣고서도 그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와 어디로 불어가는지 근원을 모른다, 민족감정으로 다투지말라, 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우리의 생명은 바람앞에 등불과 같은 것 이어서 언제 그 생명력이 꺼질지 모른다….
나는 그여자의 장황한 얘기를 어렴풋이 알아들은 것 같았으나 그시간이 지나자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부임하던 첫날부터 우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그여자를 일본인아이들은 몹시 미워했다. 도다를 비롯한 일본인아이들은 거의모두가 면의 유지급인사를 학부형으로 두고 있었으나 그여자는 눈에 거슬리기만 하면 사정없이 매를 때렸다.
일본인아이들이 그여자를 미워한것 못지않게 조선인인 우리들도 그여자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여자는 1주일에 한번씩 복장검사를 실시했는데 조선인아이들은 거의 모두가 복장검사에 걸리게 마련이었다. 일본인아이들처럼 목욕을 하거나 이빨을 닦는것이 습관화되어 있지않던 우리들에게 복장검사는 여간 난처한것이 아니었다. 그여자는 우리가 옷을 세탁해입지도 않고 목욕을 하지도 않는다고 화를 냈다.
손톱검사, 이빨검사, 목뒤의 때 검사…그여자는 우리가 청결하지 못한것은 게으른 민족성 때문이며, 이제는 깊은 잠속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 민족의 발전은, 그 민족이 얼마나 청결한 생활을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도리없이 학교 앞으로 흐르는 개울에서 새삼스럽게 얼굴을 씻거나 목뒤의 때를 닦느라고 법석을 떨어댔다. 그래도 그여자는 우리가 청결하지 못하다고 얼굴을 찌푸리며 우리의 손바닥을 회초리로 때렸다. 우리는 우리의 손바닥에 가해지는 회초리의 중량만큼 그여자를 미워했다.
그 여선생님이 우리에게서 사라진것은 부임첫해의 가을이었다. 대륙과 바다에서 무적을 자랑하며 침략을 일삼던 대 일본제국의 국운도 막바지에 이르러 놋그릇공출이며, 곡식수탈, 학도병징집, 정신대처녀의 강제모집등으로 허리에 일본도를 찬순사들이 뻔질나게 마을에 드나들었고 마을사람들은 그들의 핏발선눈에 잔뜩겁을 집어먹고 몸을 사렸다. 그러나 소학교생도인 우리들에게는 전쟁이니 공출이니 하며 설치는 순사들과 면서기가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다.
여름방학이 끝나 새침데기 진영자선생님의 복장검사도 다시 시작되었고 우리는 여전히 매를 맞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했다. 우리는 진영자선생님의 쌀쌀한 얼굴을 생각하며 개울에 모여 목뒤의 때를 닦거나 모래를 손가락에 묻혀 이빨을 닦기위하여 부산을 떨었다. 그런 복새통에도 가을은 소리없이 깊어가고 있었다. 논가운데 허수아비가 서고 누렇게 고개를 숙인 들판에서 참새가 떼를 지어날았다.
그날은 학교에서 몹시 늦게 끝났다. 우리분단이 청소담당이었는데 어쩐일인지 선생님이 나오지않아 장난만하고 놀다가 옆반선생님에게 야단을 맞고서야 청소를 했으므로 시간이 오래걸렸던 것이다.
나는 터덜터덜 신작로를 걸어서 하학하기 시작했다. 신작로는 뱀밭골을 지나 군(군)까지 곧장 뻗어있었다.
그러나 나는 군을지난 신작로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못했다. 나는 군까지 한번도 가본일이없었다. 게다가 뱀밭골까지 가기도전에 신작로에서 갈라져 호젓한 산길로 들어서야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그길을 이용하여 통학했다.
신작로엔 자갈이 많았다. 나는 듬성듬성 서있는 미류나무의 숫자를 헤아리기도하고 지난봄꽃길을 만든다고 봄비가 부슬부슬 내릴때 심어놓은 코스모스의 꽃잎을 따서 하늘에 던지며 걸었다. 짧은 가을해가 기울고있는 신작로는 인적도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신작로라고 해야 방울소리를 딸랑거리는 우마차나 다닐뿐 여간해서는 지나가는 차를 볼수도 없었다.
내가 신작로를 터덜터덜 걷고 있을때 뱀밭골쪽의 고갯마루에 검은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차츰차츰 그들이 고갯마루를 내려오기 시작하자 나는 그들이 순사라는 것을 알아볼수 있었다. 순사는 두사람 이었고 가운데는 낯익은 흰색양복을 입은 여자가 얼굴을 꼿꼿이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진영자선생님 이었다. 나는 진영자선생님이 일본순사들에게 잡혀간다는 것을 눈치챘다.
『선생님』
나는 순사가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어 선생님에게 꾸벅 절을했다.
『아, 수길이구나. 이제끝났니?』
『네, 청소를 했어요』
『그래 수고했다』
선생님은 걸음을 멈추고 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선생님 어디가셔요?』
『지서에…』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선생님은 참새떼가 푸르르 날아가는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왠일인지 선생님의 얼굴이 몹시 쓸쓸해 보였다.
『공부잘해라!』
순사들에게 떠밀려서 선생님은 걸음을 성큼성큼 떼놓았다. 선생님의 가냘픈허리와 팔에 잿빛의 포승줄이 묶여있었다. 나는 갑자기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일본순사들이 둘이나 되었으므로 나는 선생님이 산굽이를 돌아가 보이지 않을때까지 가만히 바라보는 것외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아홉 살이었다. 민족의식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고있었으나 그것은 안개속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날이후 선생님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무슨 독서회사건에 연루되어 일본헌병대에 끌려다니기도 했고 2년간 감옥살이도 했다는 거였다. 일본인 아이들이 학교에다 퍼뜨린 소문에 의하면 선생님은 이번에도 반제동맹(반제동맹)이라는 비밀결사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사상객인 모양이야….) 나는 진영자선생님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어렵지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비로소 나는 일본인들이 미워지기 시작했고 선생님을 미워하던 내자신이 후회스러워졌다.
문득 선생님에게 야단맞던 일이 생각났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의 어느날 선생님은 우리에게 장래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은적이 있었다.
내차례가 되자 나는 어깨를 쭉펴고 자랑스러운 대일본제국의 순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무슨 까닭인지 선생님은 몹시 화가나서 들고있던 책으로 내머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눈앞에서 별이 반짝이는것 같았으나 나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일본인의 의식을 갖고있던 나는 선생님의 증오를 이해할 수 없었다.
『너내일 반성문 써와!』
선생님은 씩씩거리며 외쳤으나 나는 반성문을 써가지 않았다. 그리고 곧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날 내머리를 후려치던 선생님의 가슴이 눈앞에 닿을듯이 다가와 있던 생각이 난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한없이 깊이 눌려질 것 같던 선생님의 젖가슴에서 달콤하고 향긋한 살 냄새, 싱싱한 풀잎 같던 젊은 처녀의 살냄새가 코끝에 느껴졌다.
지금, 그냄새가 또다시 코끝에서 달콤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다음해의 여름에 해방이 되었다.
사람들은 한동안 해방의 감격을 떠들썩하게 얘기했다. 징용에 끌려간 장정들의 얘기, 일본본토 어딘가의 방직공장에 돈벌러 간다던 정신대 처녀의 얘기, 많은 농토의 주인이었던 일본인들이 물러간 뒤에 그맘을 누구누구가 차지하여 부자가 되었다거나, 친일파 아무개를 면의장터에서 만나 흠씬 두들겨팼다는 식의 얘기들이었다.
일본인들이 물러간 뒤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일본인을 저주했고 일본인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저항했다고 떠들어댔다. 일본의 조선에대한 가혹한 학대와 온갖수탈, 국내의 유명한 민족지도자들의 이름이 끝없이 화제에 올랐다.
일본순사들에게 끌려간 진영자선생님이 학교로 돌아온것은 그무렵이었다. 전교생들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독립운동을 하신 자랑스러운 선생님이라고 교감선생님이 소개를 하는데도선생님의 얼굴은 왠일인지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교감선생님은 진영자선생님이 평양에서 독서회사건으로 2년간 옥살이를 하셨고, 우리학교에 재직하시면서도 징변반대운동단체인 반제동맹에서 활동중에 있다가 일본순사들에게 체포되어 또다시 감옥살이를 하시다가 해방을 맞이하게 된것이라고 소개했다.
진영자선생님이 감옥에서 받은 고통은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극심한 것이었으며, 진영자선생님이야 말로 가장 고귀하고 훌륭한 애국자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짝짝짝 박수를 치고 1학년어린이가 꽃다발을 선사해도 선생님은 웃지않았다.
선생님이 나의 형수가 된것은 아직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해방의 감격이 채식지 않았을때였다.
평양에서 형이 돌아왔는데 형은 전에없이 눈빛이 날카로왔고 말수가 적었다. 형은 나에게 러시아 동화집을 몇권 선물했다.
형은 전문학교에 다닐때부터 학생운동을 하여 집에는 무시로 일본고등계형사들이 드나들었다. 아버지는 독립이니, 사상이니 하고 돌아다니는 형을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견딜 수 없었던 노릇은 고등계형사들의 닦달이었다. 전문학교를 근근히 졸업한형이 하는일 없이 노상 형사들에게나 불려다니자 아버지에게 쓸모없는 놈, 버린 자식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아버지에게는 독립이니, 사상이니 하는일들은 집안망칠 일로 밖에 생각되지않았던 모양이었다.
형은 감옥에서 해방을 맞았다.
감옥에서 해방을 맞이한 것은 진영자선생님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러고 보면 두사람의 얼굴에 나타나는 그날카로운 눈빛은 닯은데가 있었다.
어떻게해서 진영자선생넘이 나의 형수가 되었는지 나는 전혀 이해할길이 없었다. 다만 그들이 산책하는 개울둑을 따라걸으며 들은 얘기에 의하면 형과 선생님은 전문학교 시절에 학생운동을 하기위하여 처음만났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만나자마자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들이 사상적동지라고 하는 얘기를 들으며 진한 배신감과 외로움을 느꼈다. 그들의 산책로는 마을의 고샅을 돌아 흐르는 실개울의 둑길이었다. 물이맑고 차서 한전이라고 부르는 그 개울의 둑을 따라 곧장 올라가면 창룡사라는 고색창연한 절이 있었다.
형과 선생님은 실버들이 늘어진 개울둑을 따라걸으며 산책을 즐겼다. 그들은 창룡사의 돌층계나 경내의 은행나무 밑에 앉아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사랑을 속삭였다. 형과 다정히 앉아서 얘기할때만 이선생님의 잔잔한 얼굴에 꽃처럼 상냥한 미소가 피었다.
나는 누렁이를 데리고 그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놀았다. 누렁이만이 나의 유일한 친구였고 벗이었다. 그들의 얘기는 국제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성취, 평양의 열성자대회, 소비에트인민공화국 따위의 내가 전혀 들어본 일이 없는 생소한 것들이었다. 나는 잘알지 못했으나 그들이 다가오는 어떤것을 막연히 동경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둘은 그것을 두려움과 불안속에서 기다리고 있는것이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오고있다!)그들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있으면 나는 안개속의 희미한 지평선 같은 것이 떠오르곤 했다. 그지평선에서 쿵쿵거리는 발짝소리를 내며 무엇인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형과 선생님이 결혼하던 날 형에게서 선물 받은 동화책을 발기발기 찢어버리는 것으로 나는 선생님에게 향해있던 내 마음을 달랬다. 그여자는 이제 완전히 마음속에서나 어디서나 나의것이 아니었다.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아 형은 혼자서 평양으로 떠났다.
선생님은 아니, 나의 형수는 여전히 내가다니는 소학교에서 교원생활을 했다. 형수는 우리 집에서 자전거통학을 했다. 사람들이 자전거통학을 하는 형수를 손가락질하며 저런여자는 아이를 낳지 못할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얼굴이 예쁘고 도도한 탓으로 그들은 형수가 소박을 맞을상(상)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은 어느정도 비슷이 맞아 떨어졌다.
평양으로 떠났던 형이 돌아온것은 해방이 된지도 어느덧4년이나 지난뒤의 일이었다. 나는 소학교를 졸업하고 군의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해는 유난히 많은눈이 내렸다. 늦가을부터 시작한눈이 녹을 사이도 없이 내리고 또 내렸다. 사람들은 눈이많이 내리는 것은 풍년이들 조짐이라고 좋아했으나 내가 막연히 느끼는 시국은 불길한 양상으로 치달리고 있었다. 해방직후 극렬한 파괴활동을 일삼던 공산당의 테러는 잠잠해진 듯했으나 그때는 이미 이북에서 쳐내려 올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소문을 믿지 않았다. 제동족끼리 무엇때문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날도 눈이많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장정들을 따라 노루사냥을 갔다가 돌아와 일찍 잠이들었다. 노루는 잡지못했으나 기분좋은 피로가 나를 초저녁부터 잠들게했다. 잠결에 나는누군가 두런두런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쉽사리 눈이 떠지지않아 나는 잠이든채로 귀를 기울었다. 그소리는 형수가 자는 방에서 들리고 있었으나 너무나 낮아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무슨 얘기를 하고있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찌어찌하다가 겨우 눈을 뜨자 장호지로 사각거리는 눈(눈)빛이 스며들어오고 나는 이마위에 산의 그림자를 느꼈다. 눈에 덮인 마을의 지붕들, 조용하고 푸른방이 방안에 가득했다.
귀를 기울였으나 형수의 방은 이미 조용했다. 이따금 바람이 날을 세우고 마을의 고샅을돌아 달려와 문풍지를 흔들고 있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잠을 청했다. 형수의 방에서 들려온 소리는 꿈결에 들은 소리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날이새자 읍에서 사찰계 형사대가 들이닥쳤다. 그들은 평양에서 내려온 사상범 이수근을 체포한다면서 우리집을 샅샅이 뒤졌다.
『형사들이 물으면 절대모른다고 하세요!』
형수가 나의핏전에 속삭였다.
형사들은 정보를 입수했다면서 아버지와 형수를 닦달하더니 아버지를 끌고 지서로 돌아가버렸다. 몇몇순사만이 마을에 남아서 조사를 계속했다.
그들이 마을을 뒤숭숭하게 했으나 나는 전날 아이들과 약속한대로 토끼덫을 놓는일에 열중했다. 마음은 우울하고 괴로왔으나 열네살의 소년인 내가할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밤 나는 좀처럼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여러가지 괴로운 생각이 내 머리속을 어지럽혔고 나는 그 생각을 도저히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머니가 밤늦게까지 자지않고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였던 것이다.
새벽이 되기 직전이었다. 겨우 잠이설핏든 나의귓전에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나는 총소리를 듣자 가슴이 섬뜩했다. 총소리는 몇번인가 연달아 눈쌓인 골짜기로 메아리가 되어 우렁우렁 퍼져갔다. 나는 그 비정한 음향을 들으며 잠을 설쳤다. 그러나 이내 날이 밝았고 나는 마을로 뛰어나갔다. 사람들이 창룡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노루를 잡았거니 생각하면서 창룡사의 돌층계를 단숨에 뛰어 올라가 경내로 들어섰다. 그곳에 발자국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발자국은 다시 뒷산골짜기로 이어져 나는 사람들을 따라 골짜기로 달려갔다.
『피다!』
누군가 소리치는 바람에 나는 눈위에 방울방울 떨어진 핏자국을 발견했다. 핏방울은 눈위에 얼어붙어 선명하게 내시야에 들어온 것이었다.
사람들은 핏자국과 발자국을 따라 흥분해서 소리치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핏자국은 골짜기와 등성이를 넘어 끝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헐떡거리며 핏자국을 따라 눈 위에서 넘어지고 엎어지며 뛰었다. 그리고 마침내 핏자국이 끝나는곳,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원을 그리고 빙둘러서 있는곳에 이르렀다. 나는 사람들 틈을 헤집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아!)
나는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장이 튀어나온 허리를 움켜쥐고 쓰러져있는 것은 노루가 아니라 형의 시체였던 것이다. 형은 눈부신 아침햇살을 반사시키는 눈위에 얼굴을 쑤셔박고 부근의 눈을 온통 피로 물들인채 죽어있었다.
나는 눈(목)을 감았다. 눈을 찌르는 햇살이 따가와 견딜수가 없었다. 비로소 겨울아침의 차가운 냉기가 목덜미로 엄습해와 나는 몸을 떨었다.
형수가 형의 시체가 있는 골짜기로 달려온 것은 꽤오랜시간이 지나서였다. 형수는 형의 시체를 보고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형의 시체 앞에서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가 한참 만에야 고개를 처들었다. 그때 찬란한 아침햇살마저 비껴가는 형수의 하얀얼굴에 소리없는 웃음이 실룩실룩 번져가고 있었다.
형이 죽은 그해의 겨울에 아버지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형수는 온다간다 말도없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빨갱이 집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우리집은 서서히 몰락해가고 있었다.
시름시름 앓던 아버지가 눈을 감은 것은 형이 죽은 다음해의 초여름이었다. 아버지는 그날아침 일꾼들과 함께 들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쓰러진 것이었다. 일꾼들의 얘기에 의하면 보릿단을 묶고있던 아버지가 어, 하는 소리를 지르며 한손으로 이마를 짚고 엉거추춤 서있다가 앞으로 풀썩 쓰러졌는데 다시 일어나지 못하더라는 것이었다. 일꾼들이 아버지를 들쳐업고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왔으나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는 그날밤을 넘기지 못하고 숨이 끊어진 것이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지 불과 사흘도 못되어 6·25사변이 터지고 말았다. 전쟁은 소문보다도 더빨리 우리마을에 들이닥쳤고 마을사람들이 미처 피난을 가기도전에 누런 군복을 입은 인민군들에게 점령되었다. 총소리한방, 포성한번 들어보지도 못한채 마을엔 붉은 깃발이 꽂혀 펄럭였다. 행방불명이 되었던 형수가 돌아온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형수는 계급장도 없는 군복을 입은채 가죽장화를 신고, 팔에는 새빨간 완장을 두른채 담담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형수의 하얀얼굴은 더욱 도도해 보였고 붉은별을 단 모자밑의 눈에서는 살기에 가까운 광기가 번쩍이고 있었다. 그러나 형수는 번쩍이는 살기를 내면에 억눌러두고 인민교화 사업부터 실시했다. 날마다 정치학습회, 열성자대회, 독서회와 같은 군중집회가 이장집의 회나무 아래서 열렸다. 말이 없던 형수는 군중들앞에서 청산유수로 말을 쏟아놓았다. 해방전선, 미제의 꼭둑각시, 이승만정권, 소련공산당사, 러시아혁명, 볼셰비키와 레닌, 노동자와 농민의 지상 낙원이라는 말들이 형수의 붉은 입술에서 거침없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형수의 말을 곧이 듣거나 찬동하는 빚이 전혀 없었다.
총칼이 무서워 끌려나오기는 했으나 언제나 형수의 붉은 입술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다가 일장연설이 끝나면 기계적으로 박수를 치는것이 고작이었다.
형수가 반동분자 심문사업을 시작한것은 뇌성을 동반한 칠월장마가 한창일 때였다. 형수는 이장집의 잎담배건조창에 월림리 이(이)인민위원회 사무실을 열었다. 그곳에는 몇개의 책상과 의자를 갖다 놓았을뿐, 잎담배의 마르는 냄새와 황토흙벽의 눅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형수는 그곳에서 고문과 심문을 했다. 경찰관가족, 면서기, 가장 큰 담배경작지를 갖고있는 윤주사의 큰아들이 그곳에서 심문과 고문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서 가려진 죄의 경중에 따라 인민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나는 두번이나 인민재판광경을 목격했다. 면서기를 하던 내친구인 구의 아버지는 마을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회나무에 묶여 인민재판을 받은 뒤에 처형되었다. 처형은 언제나 평소에 마을사람들에게 구박을 받거나 업신여김을 받던 머슴과 날품팔이나 하는 빈농의 장정들이 했다. 그들은 어느덧 사형집행인으르 만만히 한몫을 하고있었다. 달도없는 캄캄한 밤, 그들이 움켜쥔 일본도에는 언제나 비정한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칼에서 느껴지는 비정한 살기가 형수의 싸늘한 눈에서 뿜어지는 광기와 연결되어 있는것을 느끼곤 했다.
윤주사의 큰아들이 처형당할때 나는 맨앞줄에 앉아 있었다. 월립리 이(이)인민위원장으로선출된 곰보 강만석이 떠듬거리며 윤주사의 큰아들 죄상을 횃불에 비쳐가며 읽자 패거리들이 처형합시다! 인민의 적을 제거합시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강만석은 형수를 힐끔거리며 살펴본 뒤에 떨리는 목소리로 모든인민이 원하고 있으므로 반동분자 윤기혁을 처형하기로 한다고 선언을 했다.
일렁거리는 횃불의 그림자가 바람을 따라 윤주사의 큰아들 윤기혁의 얼굴에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그는 몇년전에 일본관동군으로 전투에 참여한 사람답게 의지가 굳세보였다.
『어느동무가 이반동분자를 처형하겠소?』
강만석이 수수밭쪽에 의자를 갖다놓고 앉아있는 형수와 면에서 나온 정치비서의 눈치를 살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저여자의 손에 죽고 싶소!』그때 윤기혁이 형수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내뱉었다. 내가 재빨리 형수를 쳐다보자 형수도 놀랐는지 통통하게 살이찐 정치비서를 돌아보았다. 정치비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유가 무어냐?』
『이유는 없다. 다만 이 마을 사람들은 사람 백정이 되는 것을 싫어한다』형수가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혁명은 피를 흘리지 않고 이루어질 수가 없어…』
형수는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자 재빨리 책상위의 일본도를 집어들어 윤기혁을 향해 내리쳤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나는 형수가 치켜든 일본도가 횃불에 번쩍이는 것을 보았을 뿐이었다.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울컥 치밀고 올라왔다. 그것은 형수에대한 증오의 감정이었다. 윤기혁의 몸에서 선혈이 분수처럼 뿜어졌다. 윤기혁은 고통을 참지못하고 발악에 가까운 격렬한 비명을 질러댔다.
『사람을 죽이려면 똑바로 죽여야지!』
그때 누군가 형수가 들고있던 일본도를 잡아채더니 재빨리 윤기혁의 왼쪽가슴을 푹 찔렀다. 항상 말이 없고 무던하던 작은아버지였다. 나는 작은아버지가 윤기혁을 일본도로 찌른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작은아버지가 닭모가지조차 비틀지 못할 의인이라는 마을사람들의 얘기가 내귀에 못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기혁은 사지를 몇 번 바둥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푹떨구었다. 비로소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윤기혁의 가슴에서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붉은 피가 샘물처럼 솟구쳐 흘렀다. 어찌된 일인지 형수도 마을사람들도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바람한 점 없이 후덥지근한 날씨가 사람들의 머리에 열기를 뿜어대고 납덩이같은 침묵만이 무겁게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날밤부터 나는 형수를 저주하기 시작했다. 밤이나 낮이나 속절없이 잠을 자면서 형수를 죽이는 상상에 몸부림쳤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의 내면에서 형수를 향하여 움터온 사춘기소년의 막연한 연모가 증오로 바뀌어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 무덥고 지리한여름이 가고 가을이 시작되었다. 장독대언저리에 한무더기 탐스럽게 피었던 봉선화가 시들시들 꽃잎이 말라 떨어지고 하늘이 높고 맑아졌다.
어머니는 마을사람들의 원한에 찬 눈길이 무서워 집안에서 두문불출하고 형수는 여전히 전쟁물자 공출이며 의용군모집을 하기 위하여 강만석이 패거리를 거느리고 혈안이 되어 돌아다녔다. 그여자는 풀어놓은 광녀(광녀)처럼 날뛰고 있었다. 그러나 인민군이 전쟁에 지고있다거나 국군이 반격을 개시했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하자 그녀의 얼굴에도 불길한 그림자가 덮이기 시작했다. 멀지않아 인민군이 삼팔선 이북으로 쫓겨가게 될것이라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옮겨질때는 그녀의 얼굴에서 번쩍이던 광기도 한풀꺾이고 그녀의 몸에서 무슨냄새인지 알 수 없는 시지근한 냄새와 땀 냄새가 흘렀다. 확실히 구월초순이 되자 청명한 하늘에 은빛 쌕쌕이가 자주 모습을 나타냈다. 나는 마당에서서 하얀띠를 풀어놓으며 북쪽하늘로 사라지는 비행기의 숫자를 헤아리는 것으로 나날을 소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저주가 이루어질 날이 가까이 온것이다. 그것은 산너머에서 포성이 은은하게 들리기 시작하던 어느 날이다.
형수가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강만석의 패거리들이 눈에다 핏발을 세우고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형수는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행방이 묘연한 거였다. 읍(읍)에서 인민군정치비서가 형수를 찾기 위하여 인민군들을 무수히 끌고왔으나 그들도 애꿎은 마을사람들만 닦달하다가 웬일인지 서둘러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창룡사 뒷산의 골짜기를 누비고 다니며 형수를 찾아 헤맸다. 그 골짜기 어딘가에 형수가 원한을 품고있는 장정들에 살해되어 알몸뚱이로 버려져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형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형수가 언젠가처럼 북쪽으로 사라져버린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포성이 온통 마을을 뒤흔들고 지나갔다.
그날밤 행방불명이 되었던 형수가 이장집의 회나무기둥에 묶여졌다. 요란한 포성을 들은 강만석 패거리들이 재빨리 산너머로 달아나 버리자 창룡사의 본전(본전)마루밑에 숨어었던 장정들이 붉은 깃발을 불살라버리고 형수를 끌어내 회나무기둥에 묶어 버린것이다. 그들은 국군반격소식이 하루가 다르게 전해지자 형수가 북쪽으로 달아날 것을 우려하여 잎담배 건조창에서 혼자 잠들어 있는 형수를 습격하여 재갈을 물리고 창룡사본전의 마루밑으로 끌고간것이었다. 그들은 형수만은 절대로 용서할수 없었던 것이다. 희나무기둥에 묶인 형수는 이미온건한 몸이 아니었다. 찢겨진 군복과 마구 흐트러진 머리, 군데군데 찣겨진 옷사이로 허옇게 삐져나온 살덩어리로 보아 형수는 창룡사 본전의 마루밑에 갇혀있을때 온갖수모를 당한것이 분명했다. 누런 군복바지가 간신히 걸쳐져 있는 엉덩이는 허리가 빠진듯이 늘어져 있었다. 그래도 형수는 완고한 턱을 들고 마을사람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나는 마을사람들이 두려워 이장집의 수수밭에 숨어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달빛은 희나무의 검푸른 잎새를 하얗게 닦아내며 사람들의 긴장된 얼글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그속에서 윤주사의 둘째아들과 인구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그들은 형수를 손가락질하며 무어라고 외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눈에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무릎걸음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내 남편 살려내라고 외치며 인구의 어머니가 형수의 옷을 찢어대고 마구할퀴고 물어뜯는것이 보였다. 형수는 묶인몸을 비틀고 저항하려고 하는듯 했으나 그럴수록 인구의 어머니는 사나와지고 있었다. 나는 침을 꿀컥 삼켰다. 마침내 인구의 어머니는 기진맥진하여 형수앞에 쓰러져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처치하도록 하게…』그때 작은아버지가 나타났던 것이다.
『뭐라구요?』
윤주사의 둘째아들이 작은아버지를 쏘아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 돌려보내고 자네가 죽이도록 하면되지 않겠나? 그러면 자네형의 복수도 될게아닌가?』
『싫습니다. 난 이여자의 시체도 온전하게 땅에 묻지 못하게 하겠읍니다』
『꼭 그렇게 해야되나?』
『예! 내가 이여자를 곱게 죽이면 지하에 묻힌 형님이 나를 용서하지 앓을겁니다…』
잠시 그들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나는 숨을 죽이고 희나무에 묶여있는 형수를 보았다. 이미 갈기갈기 옷이 찢겨져 벗은 몸이나 다름없는 형수의 흰몸뚱이에 달빛은 마을사람들의 원한처럼 용서없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처녀의 가슴인양 탱탱한 형수의 젖가슴이 갑자기 나를향하여 한없이 부풀고 있는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그때 형수의 고개가 힘없이 옆으로 수그러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형수의 입술에서 실같이 가느다랗게 붉은것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이)씨가 죽이시오!』
윤주사의 둘째아들이 갑자기 악을 쓰듯이 작은아버지에게 말했다. 작은아버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내가왜…?』
『이씨가 그이유는 나보다 더 잘알고 있을거요!』
『자네형 때문인가?』
윤주사의 둘째아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작은아버지를 향해 뾰족하게 깎은 죽창을내밀었을 뿐이었다. 작은아버지가 그창을 받아쥐었다.
갑자기 마을사람들이 입을 꾹다물고 침묵을 삼켰다. 작은아버지는 죽창을 들고 한참동안하늘을 쳐다보더니 형수를 향하여 겨누었다. 형수의 움직이지않는 나신은 차가운 달빚아래의 다못해 푸르스름한 광채를 띠고있었다.
『얏!』
짧은 기합소리와 함께 작은아버지의 죽창은 정확하게 형수의 흰가슴을 찔렀다. 그러나 형수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나는 오줌이 마렵기 시작했다. 문득 모든것이 정지해 버린 듯이 숨을 죽인 이장집의 넓은마당에 달빛만이 하얗게 부서져내리고 있었다.
『이런 허를 물었어…』
그때 윤주사의 둘째아들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마침내 나는 찔끔찔끔 바지에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빨갱이 노릇을 한 형수에 대해서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았다. 다만 꽤오랜 세월이흐른뒤에 작은아버지로부터 들은 얘기에 의하면 형수가 빨갱이 노릇을 한것은 그 시대적배경 탓이라고 밖에 말할수 없으며 형수가 반동분자색출사업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마을사람들을 무수히 죽인것은 일제하에서 온갖고문을 받으며 옥살이를 할때, 자신도 모르게 냉정한 지사(지사)의 성격이 만들어진 것과 죽은내형에 대한 보복심리도 어느정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거였다.
그후 우리집은 빨갱이 집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마을에서 쫓겨나야 했다. 그나마 우리가 온전하게 쫓겨날 수 있었던 것은 창룡사본전의 마루밑에 숨어있던 장정들에게 하루도 빠뜨리지않고 양식을 날라다준 작은아버지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형수의 새봉분이 만들어졌을때는 어느덧 창룡사의 뒷산에서 검실검실 어둠이 내려오고 있었다.
작은아버지와 나는 탈진하여 형수의 봉분안에 우두커니 앉아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변함없이 적막과 고요에 묻혀있는 마을은 어둠이 두꺼워지는 골짜기에 나지막이 엎드려있었다 『벌써 삼심년이나 지났으니….』
작은아버지가 홀가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큰일을 마무리지었다는 안도감과 지난 일을 후회하는 듯한 회한에 잠긴 목소리였다.
나는 담배를 꺼내 작은아버지에게 권했다. 담배를 받아무는 작은아버지의 메마른손에서 여린 흙냄새가 났다.
그러나 썩어버린 형수의 시신냄새나, 끌편의 아스라한 냄새는 이미사라지고 없었다.
『지나고보면 아무것도 아닌뎨…』작은아버지가 다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둠이 짙어지고 바람이 일기시작하자 작은아버지와 나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비가 오려는지 하늘은 낮고 찌뿌등한 잿빛이었다.
『자네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아는가?』
문득 작은아버지가 물었다.
『바람이오?』하고 되물으면서 나는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작은아버지가 낮게 소리를 내어웃었다.
『자네 할아버지가 그러시더군. 바람은 저깊은 땅속에서 불어온다고….』작은아버지는 공허한 울림이 마르는 말을하고 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나는 어둠이 두꺼워진 산길을 휘적휘적 걸어내려가는 작은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에 잠겼다.
언젠가 아버지는 나에게 저깊은 땅속에 또하나의 세계가 있다고 말했었다. 사람이 죽으면, 그곳에 가서 살게되는 것이다라고 말했었다. 나는 그세계가 어떤곳인지 상상해 본일이 없었으나 그때 갑자기 내귓전을 울리는 어떤소리에 훔칫 몸을 떨었다. 그것은 숨이넘어가던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널랑은 네형처럼 되지말아야 한다….』
아버지는 마지막 숨이 넘어가기전 나를 머리맡에 앉혀놓고 간곡한 당부를 했다. 나는 죽음의 그림자 일렁거리는 아버지의 슬픈 얼굴을 내려다보며 결코 형처럼 되지는 않겟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을 했었다.
그래, 언젠가 나를 향해서도 저깊은 땅속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어올 것이었다. 나는 결코 그바람에 휩쓸려가지는 않겠다. 비록 척박한 맘일망정, 굳게 뿌리를 내린거목(거목)처럼 의연하게 버티고서서 그바람을 견디어 낼것이다. 성큼걸음을 떼놓자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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