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와 여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택시요금의 거리·시간 병산제가 빠르면 내년 7월 서울에서부터 실시되리라고 한다. 서울시는 84년 이후로 예정된 이 제도을 앞당겨 실시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시간요금이 가산되는 택시의 주행속도와 운행 중 정지시간 등 기준을 전문기관에 용역을 주어 마련한 뒤 확정짓기로 했다.
택시요금의 병산제는 시민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찬반논의도 그 동안 무성했다. 관계자들은 이제도의 실시로 택시의 난폭 운전을 막고 교통체증을 감소시키며 시민들의 택시 선호도를 줄여 택시 승차 난을 완화하는 효과도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국이 내세우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제도가 달가운 것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사실상의 요금 인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사람 가운데도 지하철공사로 주요도로는 거의 파헤쳐 놓은 상황에서 그 실시를 앞당겨야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실시를 해도 그 시기는 지하철 공사를 어느 정도 마무리 지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작년 이맘 때 본지의 독자 토론결과를 보면「시기상조」라는 의견이 57%에 이르렀다.
생각해 보면 도심지 교통체증의 원인은 한둘이 아니다. 도로망의 불균형, 도로시설물의 불비 등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고 운전자들의 자질이나 습성에서 연유되기도 한다.
택시요금 병산제가 교통체증 완화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알 수 없지만 택시보다 두 세배가 큰 시내버스들의 도심지 통과가 더욱 큰 원인으로 지적 된지는 오래된다.
서울의 버스노선은 시민의 편익보다는 업자의 편익에 따라 조정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기능의 재배치, 주거환경의 변화 등으로 대도시의 경우 변두리와 변두리를 잇는 버스노선이 있어야 하는데도 우리 나라엔 없다.
버스 승객은 좋건 싫건 도심지 통과을 하지 않을 수 없게되어 있다.
9천대나 되는 시내버스가 하루 최소 10번씩은 도심지를 통과하게 되었으니 이들이 교통체증의 주범임엔 틀림이 없다.
따라서 택시요금 병산제는 도심지 교통체증이나 택시 승차 난의 완화 등 당국이 내세우는 이유보다는 택시운전사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입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합승금지 이후 택시운전사들의 수입이 크게 감소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틀에 하루 골로 일하는 법인 택시운전사들의 경우 12시간 노동을 해도 6만8천원에 이르는 사납금을 내고 나면 수중에 떨어지는 수입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은 엄살이나 비명만은 아니라는 게 당사자들의 말이다.
기본요금밖에 안 되는 거리를 가는데 20, 30분씩이나 걸리는 여건에서 그들이 도심지 통과를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현행 요금제도는 차량홍수, 교통혼잡으로 인한 부담을 택시운전사들만이 지라는 얘기나 같다. 흔히 요금 병산제는 지하철공사가 끝난 다음에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들 생각하기 쉽지만 역설적으로 말하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병산제의 실시는 앞당겨져야한다는 논리도 성립된다.
물론 택시운전사들의 수입보장을 위해서는 요금 병산제 아니고라도 방법은 있다. 가령 노사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액수의 월급제라든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정부지원, 세금 해택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택시요금 병산제는 언젠가는 실현되어야 할 제도인 것이다. 교통체증, 택시 승차난 완화뿐 아니라 난폭 운전으로부터 귀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도 선진국은 모두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무엇보다 교통 혼잡으로 인한 부담을 택시운전사에게만 지우지 말고 이용자들도 나누어지는 것이 합리적인 일이 아닌가 하는 각도에서 이 문제를 풀어 나갔으면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