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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타이밍인데 … " 국회에 갇힌 경제 활성화법 20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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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재건축초과이익환수 폐지법 등 20건의 경제활성화 법안이 국회에 묶여 있다. 적기에 정책을 입법화하지 못해 경제가 정치에 발목 잡힌 형국이다. 국회 정문 앞에 바리케이드가 줄줄이 놓여 있다. [김형수 기자]

담뱃값 인상과 누리과정(3~5세 무상교육) 문제로 예산심사까지 올스톱 된 지난 11월 26일. 16개 국회 상임위원회 중 유일하게 국토교통위원회가 열렸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박기춘 위원장은 이날 128개 법안을 일괄 상정했다. 이견이 없는 법안이라도 통과시키자는 상임위원들의 공감대에 따른 결정이었다. 그러나 법률안 제안 설명을 듣던 야당 의원들이 갑자기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김성태(여당 간사) 의원=“아니, 왜 상임위 하다가 다 일어나요. 뭐 하는 거예요.”

 ▶정성호(야당 간사) 의원=“다음에 하시자고요.”

 박 위원장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교섭단체 간 합의가 뭐가 잘못돼 당으로부터 어떤 지시가 좀 있었던 것 같은데….”

 지도부의 담판이 틀어지면서 상임위 철수 지시가 내려오는 바람에 상임위는 28분 만에 끝났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관문은 16개 상임위원회와 본회의다. 그러나 이처럼 상임위는 당 지도부에 예속돼 있다.

 그러다 보니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각종 법안이 매번 정치협상에 발이 묶인다. 경제 관련 상임위를 맡고 있는 한 중진 의원은 “상임위를 열고 싶어도 지도부의 결정에 따라야 할 때가 많다”며 “지금 같으면 연중 상시 국회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말했다.

 동국대 박명호(정치외교학) 교수는 “정책은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며 “제때에 정책을 입법화하지 않으면 실효를 거두기 어려운데 경제가 정치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상임위는 무력화돼 있지만 당 특별위원회·태스크포스(TF)는 만발하고 있다. 여야는 현안만 있으면 TF를 만들고 있다. 세월호·공무원연금·방산비리·부동산 등 모든 사안에 TF나 특위가 있다. 17일 현재 새누리당이 17개, 새정치연합이 22개의 TF나 특위를 가동하고 있다.

TF는 사실상 지도부의 전속기구다. 상임위는 TF의 결정을 승인하는 ‘거수기’가 될 수밖에 없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새정치연합 이상민 의원은 지난달 ‘세월호 3법(세월호법·유병언법·정부조직법)’을 통과시키면서도 “TF 정치가 국회의원들의 입법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정면 비판했다.

 단국대 가상준(정치외교학) 교수는 “정쟁의 장으로 변질된 특위를 모두 상임위 내 소위로 들여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명호 교수는 “국회는 상임위와 소위원회 중심으로 가야 한다”며 “법안에 대해선 지도부가 제시한 당론이나 정치적 타협에 앞서 상임위에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하고, 그 결과를 당 대표가 아닌 유권자에게 직접 평가받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원한 여당 의원도 “상임위원장과 상임위원들이 운영 결과에 따라 연대책임을 지는 게 맞다”고 동의했다.

 그러려면 의원 개인의 입법 활동내역을 유권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화여대 유성진(정치학) 교수는 “내용도 제대로 모르고 법안을 발의해 놓고 본회의에서 자기가 낸 법안에 반대하는 의원도 있으니 입법 추적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며 “국회 입법지원기구에서 의원들이 어떤 법안을 발의했는지, 쟁점에 대해선 어떻게 투표했는지, 투표할 때 방향이 왔다 갔다 하진 않았는지 데이터베이스화해 공개하면 지금처럼 발의 건수보다 입법 내용에 더 신경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강태화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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