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덤핑 경쟁 심해질 듯|20일 막 내린 OPEC 석유상 회의가 남긴 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20일 폐막과 함께 발표된 석유수출국기구 (OPEC)의 공동 성명은 ▲기준 유가를 현행 배럴 당 34달러 선에서 동결하고 ▲83년도 OPEC 산유 상한선을 하루 1천8백50만 배럴로 증가시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회의는 당초 예상했던 것처럼 ▲유가 동결 시기를 확정하지 못한데다 ▲개별 회원국의 쿼터 배정 문제도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더구나 현재 전세계적인 에너지 긴축 정책에 힘입어 석유가 남아돌고 있는 공급 과잉 상태에서 종전보다 하루 1백만 배럴씩이나 생산량을 증가시키기로 한 것 등은 제66차 빈 총회에 참석한 13개 OPEC회원국들이 실질적인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보여준 셈이다.
OPEC회원국들이 종국적인 생산량 쿼터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들 국가들이 결국 과거 오일 쇼크 때의 가격 인상 전쟁과는 반대로 가격 인하 전쟁을 치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은 한정된 석유 시장, 그나마 점점 그 규모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가 좀 더 많은 판매 시장을 점유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빈 회의에 참석한 OPEC 석유상들은 석유 공급 과잉을 막고 계속 하락세를 보여온 유가를 안심시키기 위해 생산량과 유가를 동결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원칙에는 일단 동의했으나 그 한정된 생산량을 13개 산유국들이 얼마만큼씩 나누어 맡느냐 하는데는 전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해 이 문제에 대한 합의는 「차후 각 회원국간의 충분한 협의」가 있은 후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과다 생산 경쟁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게 됐다.
종전 1천7백50만 배럴로 묶어 놓았던 OPEC의 하루 생산량 규제도 실제로는 여러 나라에서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이들의 총 생산량은 상한선을 훨씬 초과 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실사 OPEC회원국들이 생산량과 유가를 동결시키는 합의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새로운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게 된다. 그것은 OPEC 회원국이 아닌 영국이나 멕시코 등이 자국 생산 석유의 원활한 판매를 위해 국제 시장에서 유가를 덤핑하는 상황이 예측되기 때문이다.
특히 전수출고의 80%를 석유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석유 판매 부진으로 국가의 재정 파탄 위기에 직면해 있는 멕시코 같은 나라에서는 언제라도 OPEC국가들과 가격 인하 경쟁을 별일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일단 유가를 배럴 당 34달러로 동결시키는데 합의한 OPEC회원국들 가운데서도 그 시기가 확정되기까지 사이에는 부분적인 가격 인하가 필연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가격 인하 경쟁은 또 다른 한편으로 그 동안 오일 달러를 비축해 놓지 못해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산유국­나이지리아 같은 나라는 80년의 유가 하락 여파로 멕시코가 당했듯이 또 다른 재정 파탄을 몰고 올 위험이 있으며 이는 세계 금융 질서나 투자 시장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마저 있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야마니」 석유상은 이에 따라 OPEC회원국들이 유가를 34달러 선에 묶어놓기 위해서는 회원국들 스스로가 가격 인하를 절제해야 하는 것은 물론 과잉 생산이 되지 않도록 자중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그는 이어 만약 본격적인 가격 인하 전쟁이 벌어진다면 세계의 산유국들 가운데 승리자는 적은 비용으로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는 페르시아만 국가뿐 일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예를 들어 그들은 배럴 당 5달러씩 판매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다고 장담했다.
OPEC회원국들이 생산량 동결에 한결 같이 동의하지 않는 한 과거 22년 역사에서 단 한번도 가격 인하를 결정한 바 없는 OPEC라 하더라도 세계 석유 판매 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사상 초유의 가격 인하를 단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홍성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