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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선상 쇼' 와 '방미 광고' 의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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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뉴스 매체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마치 거울이 사물을 비춰내듯이 뉴스가 사건을 반영해야 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오늘날 이러한 반영론을 신봉하는 언론학자들은 거의 없다. 훨씬 더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은 뉴스 매체가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를 구성해내는 힘이 있다고 보는 구성주의적 관점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신문과 방송으로 대표되는 대중 매체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근본적이다. 축구 중계를 생각해보자. 피상적으로 보자면 뉴스 매체는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축구라는 사건을 중계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프로 스포츠라는 제도 자체가 생겨난 것이 모두 대중 매체 덕분이다. 연예인 역시 유달리 예쁘고 멋있기 때문에 텔레비전에 나오게 되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에 나오기 때문에 유달리 예쁘고 멋있어 보이는 스타가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많은 정치인이 있다.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볼 때 이들은 모두 뉴스 매체가 낳은 산물이다. 마치 영화배우가 영화라는 매체 덕분에 생겨난 것과 똑같은 이치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나 모두 대중 매체라는 연못에서 사는 물고기 같은 신세라는 점에서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 그들은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종류에 약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뉴스 매체라는 물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라는 자신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결국 정치란 쇼 비즈니스라는 현대 민주주의의 본질을 노골적으로 인정한다.

전투복 차림으로 직접 전투기를 몰고 항공모함에 내려 수천명의 병사가 환호하는 가운데 전쟁 승리를 선언한다. 부시는 어려운 전투를 막 승리로 이끌고 돌아온 '탑건' 영화의 주인공 겸 감독이 되고 이 장면은 전 세계로 생중계된다.

이러한 행동이 문민 대통령이라는 미국의 헌법적 전통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강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부시가 이러한 '연기'를 강행한 것은 남는 것은 결국 이미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픽션과 현실을 구별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대중 매체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미지가 곧 가장 견고한 실체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시간이 지나면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환상과도 같지만 이미지는 영원히 남아 굳건한 실체로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에 반해 노무현 정부는 뉴스 매체의 본질을 아직도 '반영론'의 관점에서 보고 있는 듯하다.

언론이 할 일이란 일어난 사건을 객관적이고도 공정하게 보도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언론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려는 자세는 뉴스 매체의 기능과 역할과 본질에 대한 피상적 이해에서 비롯됐다고밖에 볼 수 없다.

정치인과 언론은 서로 싸울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어항 속의 물고기가 자신이 헤엄치고 있는 물과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는가? 물은 물고기 없어도 물이다. 그러나 물고기는 물 없이는 아예 존재할 수조차 없다.

방미 시점에 맞춰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주요 일간지의 전면 광고에 등장하게 됐다는 소식을 접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돈 들여가며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 주요 일간지에 등장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광고 면에서 어색하게 손 흔들고 있는 사진으로서가 아니라 오피니언 면에서 세련된 논리와 멋진 유머 감각을 보여주는 칼럼으로 등장했어야 한다. 자비를 들여 광고하는 것은 주연급 스타가 할 일이 결코 아니다.

金周煥(연세대교수·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