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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교양] '흔들리며 피는 꽃'·'학교 아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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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공교육, 반목하는 교사들…. 15일 스승의 날은 다가오지만 교육계 소식은 여전히 밝지 않다. 그러나 열정을 가진 선생님과 그들을 아빠 이상으로 따르는 아이들 사이의 이야기는 감동으로 이어진다.

10대들에게 가슴을 열었던 두 교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흔들리며 피는 꽃' '학교 아빠'가 각각 보여주는 교실 속으로 들어가 보자.

강남의 '잘 나가는' 중학교에서 모교인 강북의 대광중학교로 전근한 문경보(37)선생님. 출근 첫날 교실 조명이 어두워 형광등을 더 달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강남 학교보다 형광등이 하나 더 달려 있는 것 아닌가. 책에 따르면 그 이유는 강남 아이들은 얼굴이 훤했던데 비해 이곳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인듯도 싶다. 그러나 국어를 가르치는 문선생님의 전근 첫날은 이런 먹먹함으로 시작됐다. 정신병자 어머니가 무서워 차라리 절도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고 싶다는 재호, 선생님에게도 "형님" 소리를 해가며 나이트 클럽 '기도'로 돈을 벌다 끝내 학교를 떠난 병훈이, 춤 출 때만 행복하다는 파란눈의 혼혈아 호림이. 문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에게 다가가 닫힌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때로는 기다렸다는 듯 눈물을 왈칵 쏟으며 정에 목말라하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끝까지 심드렁하게 굴어 선생님의 힘을 빠지게 만드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학교와 친구 사이에 문제아로 분류돼 도대체 마음 붙일 곳 없던 아이들도 문선생님 담임반만 되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갔다. 선생님도 인간적 한계를 느끼며 혼자 눈물 흘릴 때가 있지만(그래서 선생님은 자기를 '울보 경보'라고 부른다), 아이들만큼은 진심을 알아주었다.

대광중을 거쳐 대광고에서 가르치는 선생님은 밤 열시 퇴근길,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는 '내가 아이들을 구원하겠다는 메시아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반성하며 '아이들에게 배워야할 사람은 바로 나'라고 되뇌인다고 한다.

'학교 아빠'의 저자인 인천 연수여고 전원하(42) 선생님은 괴짜다. 이 선생님 반의 급훈은 언제나 '충성'. 군사정권 시대도 아닌데 왠 충성? 보수적인 교장 선생님들마저 뜨악해 한다.

게다가 인사말은 "사랑해요"다. 아이들은 닭살 돋는다는 듯이 처음에는 야유를 보낸다. 이때 던지는 선생님의 말. "우리반 급훈이 뭐지?" 큰 목소리로 '충성!'을 따라하라는 유도다. "난 오늘부터 너희들의 아빠다.

너희는 형제며 기쁨과 슬픔도 함께 하자"는 설명은 그 다음에 나온다. 한데 말이란 참 신기하다. 시간이 가면서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사랑한다는 말을 저절로 하고, 응석까지 부린다.

놀라운 사실 하나 더. 한번은 1백20명 아이들에게 아빠로부터 받은 감동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줬다. 그랬더니 숙제를 해온 아이는 채 열명이 되지 않더란다. 전선생님 같이 화통한 '학교 아빠'가 인기 있는 이유에는 우리 사회 가정의 '아버지 부재'를 말하는 것은 아닐지.

교실 창문 너머 들리는 뻥튀기 장수의 "뻥" 소리를 듣고는 지갑을 꺼내며 "얼른 사와, 나눠먹자"는 선생님, 생일을 맞은 반 아이에게 선물과 카드를 건넨 다음 "너는 오늘 청소 면제, 자율학습도 빠지고 싶으면 빠져"라는 유쾌.상쾌.통쾌 선생님. 교직생활 18년 동안 아이들과 기쁨은 두배로, 슬픔은 반으로 나누었다고 생각하는 전선생님은 이렇게 권유한다. "아이들이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요? 딱 한 번만 그들의 편이 돼 일단 망가져 보십시오"라고.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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