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60억 뇌물 받은 류톄난 … 지름길 인생의 파멸

중앙일보

입력

'지름길(捷徑)로 가라.'

류톄난(劉鐵男·59) 전 중국 국가에너지국장 겸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차관급)의 인생관이다. 10일 중국 허베이(河北)성 랑팡(廊坊)시 중급인민법원은 그에게 3558만 위안(약 63억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무기 징역과 정치권리 종신박탈, 개인재산 전액 몰수를 선고했다.

한때 중국 에너지업계 황태자로 불렸던 그가 왜 이런 파멸을 맞았을까. 공산당 기율위는 이날 홈페이지에 류의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부패 과정을 소개했다. 그는 1954년 베이징(北京)의 한 가난한 공장 노동자의 집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릴적 너무 가난해 거리에서 석탄재나 철근을 주워 팔았지만 하루 세 끼 먹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머리는 좋아 학교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중학교 시절 어느날 중국을 방문하는 한 외빈 환영을 위해 베이징 중심가인 창안제(長安街)로 동원됐다. 학생대표였던 그는 행렬의 맨 앞줄에 배치됐다. 그러나 외교부 의전 담당자가 천으로 덧대 꿰맨 셔츠를 입은 그를 보고는 맨 뒷줄로 가라고 했다. 류는 “당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가난하고 지위·권력이 없으면 대중 앞에서 무시당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지름길로 출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류의 ‘지름길 인생관’이 탄생한 순간이다.

탁월한 업무성과와 대인관계를 무기로 그는 승승장구해 2005년 국가계획위원회 산업발전사 사장(司長·국장급)에 올랐다. 당시 그는 산둥(山東)성에서 금속회사를 경영하는 한 기업인에게 “잘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2만 위안의 뇌물을 처음으로 받았다. 그는 “돌려줄 생각도 했지만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요행을 믿었고 그게 오늘날 나를 망치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뇌물을 통해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지름길’로 달렸고 국가 에너지 국장이라는 요직 중 요직에 올랐다.

그는 아들 류더청(劉德成·29)에게도 그의 인생관을 물려줬다. 류더청은 검찰 조사에서 “어릴 적 아버지는 날 자전거에 태우고 할머니 집에 자주 갔는데 항상 큰 길로 가지 않고 (지름길인) 골목으로 갔다. 그러면서 저에게 사람은 반드시 ‘지름길’로 가는 방법을 배워야 출세하고, 사람 위에 있어야 존경을 받는다고 가르쳤다”고 진술했다.

스포츠카 매니어였던 류더청은 사업에 능력이 없었으나 아버지의 배경과 권력을 이용해 수많은 사업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뇌물을 챙겼다. 류는 3558만 위안의 뇌물 중 97%를 그의 아들을 통해 받았다. 아버지의 권세가 아들에게는 인생의 지름길이었던 셈이다. 류는 변호인에게 “자식 교육을 잘못시킨 내 잘못”이라며 뒤늦은 눈물을 흘렸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chkc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