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설움 안은채 한판 어우러진 『경기도당굿』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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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마을굿은 온마을 전체가 들어서 신과 자연과 이웃이 만나는 화해의 장-. 그러나 지금 굿을 하는 마을은 거의 없다. 간소하게 예를 지내는 곳은 간혹 있으나 무당을 부르고 풍악을 잡히며 놀이를 하는 마을 전체의 축제로서의 굿은 이재 좀체 볼수 없다.
경기도부천시중동의 장말마을. 경기도당굿으로 유서깊은 이마을에선 지난8∼9일 이틀에 걸쳐 이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굿판이 벌어졌다. 아파트군이 마을의 코앞까지 들어선 판에 내년이면 시의 도시계획에 밀려 수백년의 전설이 서린웃당·아랫당이 모두 헐리게 됐다는것.
원래 도당굿은 촌락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동제다. 동제는 부족국가시대 이래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협동을 다짐하며 벌여온 민중의 축제.
8일낮 앉은 당주겸 도당할아버지 장막갈씨(69)가 앞장서 웃당에서 아랫당으로 당신을 모셔오면서 벌어진 굿판은 이어 돌돌이로 들어가면서 한층 활기를 띠었다. 돌돌이란 마을의 장승과 공동우물을 돌면서 한바탕 굿을 하는것.
마을을 돈 이날의 굿꾼 이룡우(84)·조미춘(65) 씨들은 잽이(악사)들에게 풍악을 잡히면서 당으로 돌아왔다.
이어서 자손의 수명장수를 칠성님께 비는 시루말(원성굿), 당금애기 신화가 나오는 제석굿, 도당할머니를 위한 본향굿, 장단을 바꿔가며 개인의 묘기를 보여주는 터벌림, 손님마마(천연두신)를 위한 손굿, 그리고 옛날 이름을 날렸던 장수신을 위한 군웅굿이 벌어진다.
군웅굿은 그야말로 도당굿에서 가장 크고 볼만한거리로,이때쯤 되면 밤은 깊어 이미 새벽에 이른다.
다음날 아침 굿꾼들이 오방신장기를 들고 중타령을 하며 노는 신강굿에 이어 끝으로 뒷전이 벌어졌다.
흥겨운 놀이와 풍성한 재담 속에서 액을 몰고 온다는 정업이(허잽이)를 짚으로 만들어 놀다가 태워버리면서 굿꾼과 마을사람들은 함께 마냥 웃으며 굿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날 보기 드문 굿 현장을 찾아 관심있는 학자와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이마을 도당굿엔 두번째 와본다는 굿학회 김인회교수(연세대)는 경기도당굿이 사진이나 슬라이드 상태론 정리가 됐으나 비디오녹화는 돼있지 못하다며 마지막 굿현장을 잡으려는 굿녹화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시대가 흐를수록 굿 한번 하기가 힘들어요.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 마을의 젊은이들이 모여 노인들의 의견을 들어가며 준비해왔어요. 경비를 추렴하여 굿준비를 하는데 보름은 걸렸지요.』
어린 시절 흥청대던 굿판을 회상하며 오늘의 어려움을 털어놓는 이마을 서영진씨(43)의 말. 마을 사람들은 당장 도시계획에 밀려 헐릴 옷당의 돌팡구지(바위)와 아랫당의 당집·당나무가 아쉽다며 시당국의 보존책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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