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가혹한 고문, 미국 가치와 상반돼" 보고서 공개 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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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을 통해 “미 중앙정보국(CIA)의 가혹한 신문 방식은 미국과 미국민의 가치에 반한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이런 방법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대통령의 권한을 계속 행사할 것”이라며 고문 금지를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그러나 전임 부시 정권과 공화당 인사들은 보고서 공개를 격렬히 비난하면서 여야 간의 갈등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순식간에 고문 국가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개선 압박 노력도 암초를 만났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보고서 공개를 환영하며 고문 금지를 약속한 데 대해 베트남전쟁 당시 5년간 포로 생활을 한 존 매케인(공화) 의원은 “고문으로 미국이 더 안전할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며 공화당 의원으로는 드물게 보고서 공개를 지지했다. 하지만 고문이 이뤄지던 당시 행정부를 이끌었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 7일 CNN에 출연해 “조국을 위해 일하는 CIA 요원들은 애국자”라고 옹호했다. 2001년 9·11 당시 CIA를 이끌었던 조지 테닛 전 CIA 국장은 “이 신문이 있었기에 알카에다 지도자들을 붙잡을 수 있었고 대량 살상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고 반박했다.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와 색스비 챕블리스 상원 정보위 공화당 간사도 이날 공동 성명에서 당시 CIA의 조사 방식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이 주도해온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에도 먹구름이 꼈다. 지난달 유엔 총회 제3위원회를 통과한 북한 인권 결의안은 유럽연합(EU)과 일본, 우리나라 등 60개국이 공동 제안했지만 미국의 역할이 컸다. 결의안은 이달 유엔 총회에서 채택이 유력하다. 이미 한국과 미국·호주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속 10개 이사국은 안보리 의장에게 북한 인권 상황을 의제로 상정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한 상태다.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거부권 행사를 공언하고 있긴 하지만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북한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를 내놓고 반대하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CIA 보고서 공개는 이 같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북한 역시 반발의 수위를 한층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신문이 지난 8일 퍼거슨 사태 등을 거론하며 미국을 ‘인권 말살 제국’이라고 비난하는 등 최근 미국의 인권침해 실태 부각에 주력하고 있는 북한으로선 호재를 만난 셈이다.

뉴욕·워싱턴=이상렬·채병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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