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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서울시향부터 개혁 도마에 올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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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강기헌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강기헌
사회부문 기자

2014년 서울시향은 우울하다. 연초 서울시가 밝힌 경영평가에서 출연기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지난 8일에는 인사고과 없이 승진인사가 이뤄진 사실이 폭로됐다. 그 다음엔 ‘보스’들의 뉴스가 줄을 이었다. 지휘자인 정명훈 예술감독이 해외 활동을 위해 시향 일정을 여러 개 취소하거나 변경했다는 사실이 행정감사에서 밝혀졌다. 설상가상으로 박현정 대표의 막말·성희롱 논란까지 불거졌다.

 뉴스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박 대표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정명훈 배후론’을 들고 나왔다. 경영자인 자신이 서울시향을 뜯어고치려고 하자 정 감독이 시향을 사조직처럼 운영해 자신을 공격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자 정 감독은 “말도 안 되는 인터뷰를 가지고 이상한 말이 나온다”고 반박했다.

 두 보스의 설전 속엔 서울시향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향의 올해 예산은 173억원. 이 중 108억원을 서울시가 지원한다. 시민 세금으로 예산의 62%를 충당하는 것이다. 그런 시향의 인사 시스템은 엉망이고 경영 성과는 꼴찌였다. 박 대표가 2013년 2월부터 시향을 맡았던 만큼 지난해 성과에 대한 그의 책임이 작지 않다. 조직 운영 평가는 그의 막말 논란으로 갈음하면 될 듯하다.

 정 감독은 어떨까. 2005년부터 그가 받은 급여는 141억원이 넘는다. 세계적 지휘자이자 국보급 예술가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도 있다. 미국 LA타임스와 블룸버그에 따르면 구스타보 두다멜(LA필하모닉)이 143만 달러(15억7800만원, 2011년), 앨런 길버트(뉴욕필)가 75만 달러(8억2700만원, 2009년)의 연봉을 받는다.

 문제는 ‘투명했는가’와 ‘최선을 다했는가’다. 뉴욕 필하모닉의 경우 연차별 보고서를 낼 때 1달러 단위까지 예산 내역을 공개한다. 거기엔 지휘자의 근무시간도 기록된다. 당연히 지휘자의 근태도 평가 대상이다.

 지난 9월 빈 국립오페라단이 정 감독에게 지휘를 요청하자 그는 시향 일정을 대거 조정했다. 이미 4월에 일정이 확정돼 700석이나 표가 팔린 통영 음악회의 일정 변경은 큰 논란을 낳았다. 2011년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박원순 시장은 정 감독과 재계약했다. 그때 정 감독은 ‘포스트 정명훈’을 육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감독은 박 대표와 갈등이 불거지자 지휘자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뒤를 이을 후계자는 과연 키워져 있는 걸까.

 박 시장은 서울시 행정과 출연기관, 그리고 공기업에 대한 혁신안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10일엔 방만한 지하철을 대수술하는 통합안을 내놨다. 하지만 시향이 더 급한 것 같다.

강기헌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