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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과 반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바로 여기가 무릉도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복사꽃이 활짝 피어있다. 온 세계가 음울한 장기불황에 싸여있는데 동방의 「코리아」만은 밝고 맑은 것이다. 적어도 경제지표 상으론 그렇다.
경기는 살아나 힘찬 성장을 하고 있고, 물가는 안정되고, 국제수지는 개선되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 운운하면서 죽을 고생을 하고있는 다른 나라들이 크게 부러워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경제가 복사꽃처럼 밝다는데 대해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경제지표야 어떻든 실제 피부로 느끼는 경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신문경기」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 지표상으로 복사꽃이 어떻게 피었는가.
일기예보와 같이 경기를 예보하는 경기예고지표라는 것이 있는데 l·0이상이면 불황권을 넘었다고 본다. 경기지표는 지난 8개월 동안 꾸준히 올라 10월중에 1·2에 달했다.
벌써 불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1·2는 총평균 점수 같은 것으로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통화·대출증가와 건축허가면적 급증이 점수를 크게 올린 대신 생산·출하와 수출주문 등은 여전히 과락상태다. 분명히 점수는 올라갔지만 진짜 실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다.
돈이 크게 늘거나 부동산투기가 일어도 경기지표는 올라간다. 그런 현상은 성장률에 있어서도 나타나는데 온 세계가「제로」혹은「마이너스」성장에 허덕이고 있는 때에 5·3%(l∼9월)의 실질성장을 한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광공업이 3%성장밖에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역시 광공업이 힘차게 뻗어야 경제의 뒤끝이 좋은 것이다. 같은 성장을 해도 상가나 발전소를 많이 짓거나 과일이 풍작이어서 된 것이면 어딘가 좀 미흡하다.
고용사정은 너무 좋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10월의 실업률은 3·2%밖에 안되어 미국의 10·4%나 서독의 8·2%등에 비하면 천양지차가 있다.
보통실업률이 4%면 완전고용상태로 보는데 우리가 그보다 훨씬 낮으니 구미에서 『당신네들은 그토록 고용사정이 좋으니 우리의 많은 실업자들을 살리기 위해 수입규제를 좀 해도 괜찮겠지요』해도 할말이 없게 되었다.
『한국에선 1주일에 1시간만 일해도 실업자로 안치며 10월은 농번기라 더욱 실업률이 낮지만 실은 사정이 그토록 좋은 게 아닙니다』하고 통사정을 해도 믿지 않으려 할 것이다. 요즘 같은 세계적 불황기에 실업률 3·2%는 크게 찬탄을 받음과 동시에 시샘을 유발할 것이다. 금년 경제실적의 백미는 역시 물가안정이다.
1년 전에 비해 도매하는 3·l%, 소비자는 4·2%밖에 안 올라 60연대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금년 물가안정도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지난 3년여 동안 모두들 고생한 덕분인데 지난 3여년 동안 20%이하로 유지되던 통화증가율이 금년 추석이후 60%선을 넘어서 어쩐지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은 신경과민일까.
금년물가가 5%내로 안정되었지만 서민생활에 큰 비중을 정하는 대도시 전세 값이 28%가량 올랐고 집 값도 한바탕 들먹인 것은 옥의티라고 자위할 수밖에 없다. 전세값 등은 물가지수엔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국제수지는 아예 흑자를 내고 있는 대만 등엔 떨어지지만 적자가 많이 줄어 아르헨티나·브라질·폴란드 등엔 크게 뽐낼만하다.
이렇듯 우리경제는 총량기준으로는 분명히 복사꽃이 피어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반점들이 많다.
둘다 같이 보아야하는데 복사꽃만 너무 강조되는 것 같다. 【최우석 <부국장 겸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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