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무릅쓸 명분 없어 중동 강경파·북한비방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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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의 「레바논파병 불가」결정은 이상보다는 현실이, 모험보다는 안전이 더 고려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국제 평화 군으로서의 국위선양이나, 미국이 후견하고 있는 레바논에 대한 협력이라는 대의명분의 차원보다는 그 협력이 자칫 초래할지도 모를 여러 부작용이 더 염려된다는 현실판단이 「파병불가」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때문에 「우리가 처해 있는 제반 국내·외적인 여건에 비추어 현시점에서 군대를 해외에 파견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표현 속에는 포괄적이긴 하지만 정부가 우려하고 있는 여러 부작용에 대한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레바논과의 기존 우호관계, 세계평화에 기여키 위한 모처럼의 기회 등에도 불구하고 파병불가라는 고심의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정부의 입장은 정부가 표현한 「제반 국내외적인 여건」을 보다 면밀히 관찰해봄으로써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외교전문가들은 우선 레바논 파병의 전제가 되는 레바논 영토 내에서의 이스라엘·시리아·PLO 등 외국군대 철수전망에 대한 불확실성 및 레바논 정국의 불투명성을 지적한다. 「하비브」특사의 외교 노력에 따른 외국군철수 문제는 지난주 초 레바논 정부와 이스라엘 이 이를 위한 1차 접촉을 가졌으나 아직 아무런 구체적 진전이 없는 상태다.
협상이 순조롭게 진척돼 외국군의 철수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종파간, 민병대 간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분쟁의 불씨가 국제평화군의 파병과 역할수행을 어렵게 만든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우리와 같이 파병요청을 받은 스웨덴이 일찌감치 자국헌법상의 제약을 들어 UN깃발이 아닌 국제 평화군 파병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도 그런 상황판단 때문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레바논 사태에 대해 이해를 서로 달리하고있는 중동의 강·수건국가들의 다기 한 입장 또한 파병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변수다. 이스라엘에 대해 적대적인 중동국가중 상당수가 미국주도의 레바논 평화협상계획 자체에 반대 내지는 회의적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때문에 정부가 애써 구축해 놓은 제3세계 외교기반이 파병으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비방과 악선전이 여기에 편승할 경우 우리와 깊은 경제관계를 맺고있는 일부 아랍 강경국과의 관계가 불편한 국면에 처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이런 가능성을 무릅쓰고 파병을 강행할 만한 상살 요인을 찾기 어렵다는 게 국민 여론이다.
한국군의 파병이 이루어질 경우 북한측은 제3세계권에서의 그간의 실지회복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우리의 국제적 이미지를 훼손하려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하려고 해도 북한의 훼방을 받게 마련인 우리의 특수한 남북 대치상황은 같이 파병요청을 받은 다른 국가들에는 없는 우리만의 제약요건이다.
파병불가의 대내요인으로 적기는 하지만 파병경비부담의 애로도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
1개 대대병력의 파병유지비가 국제적으로 1개월에 4백만 달러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 만큼 재정적자를 감수해야할 형편에서 이 또한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파병과 관련한 주요 변수의 하나로 지적되어온 미국과의 관계는 그 동안 서신 및 주한미대사관의 「워커」대사·「클리블런드」공사 등을 통해 몇 차례의 협의가 있었지만 단순한 협의이상의 어떤 구체적이고도 깊숙한 논의가 진행되었다는 징후는 찾아내기 어렵다.
파병이 환영할만한 일이라는 입장표명은 있었어도 그 입장의 강도는, 가령 레바논 파병이 월남 파병과는 비교될 수 없는 성격이라는 점에서 절실한 것이 아니었으며 한국의 어려운 처지에 대해서도 충분한 이해가 있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정부의 공식입장 천명으로 파병문제는 일단 「불가」라는 쪽으로 일단락 짓게 됐다. 앞으로 남은 문제는 모처럼의 인도적 제의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우리 입장을 우방들에 우호적으로 이해시키는 것과 함께 정부가 밝힌 대로 레바논의 평화회복과 재건을 위해 다른 가능한 분야에서의 협력과 지원방법을 찾는 일이라 하겠다. <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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