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제사' 박지웅(1970~ )
향이 반쯤 깎이면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기리던 마음 모처럼 북쪽을 향해 서고
열린 시간 위에 우리들 一家는 선다
음력 구월 모일, 어느 땅 밑을 드나들던 바람
조금 열어둔 문으로 아버지 들어서신다
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
그 향에 술잔을 돌리며 나는 또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생각한다
향불 내, 유세차…. 처마 끝으로 고개 쑥 내밀고는 음복과 함께 사라지는 달. 제사를 지낸 다음날 어머니는 내게 심부름을 시키셨다. 대추와 밤.사과.감.배, 인절미와 시루떡.조청 등속이 담긴 은사발 가슴에 품고 연이네와 당숙네와 먼 일가뻘 은범 아저씨네로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면 두 다리 뻐근하고 바람 먹은 무처럼 등허리 시려왔지만 마음의 풀밭엔 기쁨의 이슬이 알알이 맺혀 있었다. 이재무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