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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관계개선의 전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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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리·안드로포프」를 당 제1서기로 하는 소련의 새지도 체제 탄생으로 미-소, 그리고 동-서간의 관제개선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갑자기 높아졌다. 「브레즈네프」의 장례식에 참석한 「부시」 미국부통령과 「슐츠」 국무장관이 「안드로포프」와 만난 것을 계기로 미-소 정상회담의 실현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다. 「브레즈네프」 사망을 냉전무드해소의 출발점으로 삼아야한다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기대는 단순한 분위기에만 근거를 둔 것은 물론 아니다.
「안드로포프」체제의 출범과 합께 폴란드계엄당국은 자유노조지도자 「바웬사」를 석방하는 중요한 조치를 취했다. 작년 12윌 폴란드에 계엄이 선포되고 자유노조에 대한 탄압이 시작된 것이 미-소 그리고 동-서 관계를 전격적으로 악화시켰던 일을 생각하면 「바웬사」의 석방은 그것이 소련의 지도자교체와 동시에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미-소 관계의 개선에 중요한 전기가 될만한 일이다.
「바웬사」의 석방은 당연히 크렘린의 의사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화해의 제스처는 미국 쪽에서도 나왔다. 「레이건」 대통령이 대소 가스관금수조치를 해제한 것이다. 「레이건」 행정부는 폴란드의 계엄선포에 합의하여 작년 12윌 대소·폴란드 경제제재를 가하고 금년 6윌 그 조치를 가스관금수로까지 확대했다.
그러나 총 공사비 백10억 달러 규모의 가스관수출을 금지한 미국의 조치는 영·독·불·이·일 같은 미국의 우방들에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주어 미국에 대한 반발 역시 크게 일어났다.
미국 안에서도 22억 달러 정도의 가스관수출 길이 막힌 업체들과 노조가 「레이건」행정부에 합의하는 사태를 빚었다.
결과적으로 가스관금수는 서방진영을 분열시켜 소련에 정치적인 이득을 주어 미국으로서는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다는 여론이 높았다.
그래서 금수해제의 명분을 찾고있던 「레이건」이 「브레즈네프」 사망, 「안드로포프」 등장이라는 호기를 잡은 것이다.
가스관 금수를 해제한 동기야 어떠하든 간에 그 조치는 「안드로포프」에게는 화해제스처로, 「바웬사」의 석방에 대해서는 호혜적인 대응조치로 해석될 수 있다고 「안드로포프」의 대미, 대서방 자세를 온건하고 덜 교조주의적인 것으로 유도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이미 이 자리에서 지적한바와 같이 「안드로포프」는 크렘린 안에서는 「체르넨코」 「우스티노프」 「그로미코」와 합께 실용주의자로 알려진 사람이다. 「브레즈네프」가 그를「벼락출세」시킨 것도 교조주의자인 「수슬로프」를 견제하는데 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레이건」이 재빨리 가스관 금수를 해제하고 부통령과 국무장관을 「브레즈네프」 장례식에 보내고, 그리고 세계여론이 「안드로포프」의 온건노선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이런 사정에 대한 고려에서 나온 것 같다.
특히 최근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레이건」의 공화당이 민주당에 대패에 가까운 고배를 든 것이 2년 전 「레이건」을 당선시킨 극성스러운 보수화무드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레이건」으로서는 그의 간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소 경정 정책에 다소간의 손질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사정은 「안드로포프」도 마찬가지다. 소련의 어려운 경제사정과 미국의 국내사정은 초강대국간의 긴장완화와 협력을 절실히 요구하고있는 것이다.
이런 형편은 「안드로포프」체제가 출범하여 새로이 대외정책을 조정하는 단계에 미국과 서방세계가 소련을 자극하는 일을 삼가고 오히려 유화신호를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일반적인 판단과도 일치한다는 점을 「레이건」 행정부가 정확히 읽은 것 같다.
미-소 관계가 개선되고 신 냉전체제에 가까운 지금의 동서관계가 완화된다면 한반도 주변에도 그 파급효과가 밀어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바로 이점이 우리의 1차 적인 관심의 대상이다.
그러나 「브레즈네프」 체제하에서의 「안드로포프」를 가지고 암으로의 소련을 판단하는데는 한계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군다나 크렘린의 성좌에서 「안드로포프」가 상대적으로 어느 별자리를 차지할는지는 좀더 두고 보아야할 일이기 때문에 성급한 기대나 균형 잃은 유화조치는 위험한 일임을 명심하고 미-소의 움직임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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