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변정세 "미동"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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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련의 극동정책, 특히 대한반도정책이 「포스트·브레즈네프」 시대에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최근 소련의 타스통신 기자 3명과 외무성문화재보존국장이 방한하는 등 소련은 대한유화정책의 기미를 보였다. 「브레즈네프」의 사후에도 이러한 긴장완화의 움직임이 지속, 확대될 것인가 아니면 소강상태로 접어들 것인가, 혹은 강경파들에 의해 다시 냉각기를 맞을 것인가 등의 문제는 앞으로 소련의 후계자선정 등과 관련하여 우리의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반도문제는 미·소·중공·일 4강의 직·간접적 이해 속에 얽혀있다는 구조적 특징 때문에 소련의 국내적 변화와는 비교적 독립된 상황이 가능하다. 때문에 소련이 취할 대한반도정책은 어느 정도 윤곽이 그려져 있다고 봐도 된다.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소련의 대한정책은 근본적으로 북한과 중공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중공과 밀착될 경우 「배한-중공」 「한국-미국」이라는 4자 관계가 되며 미·중공이 남북한을 교차 승인할 경우 소련이 한반도에 발 들여놓을 틈이 전혀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과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북한의 대 중공 편향을 견제할 수 있으며 한반도문제에 소련이 관여할 발판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함직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한우도내에서 미·일·중공의 3각 관계가 굳어지기 전에 대 한국관계를 개선해 보자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
소련의 아시아정책차원에서 볼 때도 대 한국접근유화자세는 있음직한 일이다.
소련이 지난해 아시아국가들에 제의한 「상호신뢰구축제의」(CBM)를 보더라도 이 지역에서 현상고정을 희망하고 있으며 이런 소련의 입장은 한반도에서의 평화유지추구란 우리의 정책과 접점을 형성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은 한반도문제에서 소련을 제외하는 쪽으로 정책을 펴왔다는 분석이다.
즉 미·중공이 합작해 남북한을 교차 승인하는 것을 최상의 모델로 보고 극동에 대한 소련의 진출을 억제하려는 구상인 듯 하다.
우리 입장에서는 소련과의 관계개선이 이루어진다면 경제적으로도 유리한 국면을 생각할 수 있다.
안보적 차원에서도 남북한 교차 승인과 남북한관계개선의 기회를 찾을 수 있고 지금까지 북한과의 외교경쟁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날 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직접적 안보가 미국에 의해 보장받고 있는 현실에서 소련과의 관계개선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포스트·브레즈네프」 시대의 한반도정책도 위와 같은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기탁 교수(연대)는 『앞으로 소련의 권력형태가 과도기형태의 집단체제가 되든, 단일체제가 되든 대한반도정책은 긴장완화를 추진하는 방향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최근 한·소 간의 약간의 관계개선 움직임은 소련정권의 동향에 관계없이 상징적으로 지속되리라고 예측하고 이는 일·중공간의 협력강화에 대응키 위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서울대의 김학준 교수도 소련의 대한정책은 당분간 변하지 않으리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현재 소련이 내부적으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고 정치적으로도 소수민족문제 등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해 있기 때문에 후계지도체제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대외적으로는 화해주의·현상고정을 추구할 가능성이 많다고 추측했다. 대내문제가 바쁘고 심각하기 때문에 대외문제는 부차적 관심사일 수밖에 없으며. 더욱이 동북아는 전통적으로 소련의 대외문제 우선 순위가 낮기 때문에 변화를 예상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최근 한반도 문제에 관해 활발히 제기되고있는 남북한 교차승인론과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서방 측이 먼저 양보를 해 소·중공을 교차승인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지연된 교차승인론」 등의 움직임에 맞추기 위해서라도 소련의 대한화해 제스처는 계속될 가능성이 많다.
정부의 한 소련전문가도 후계자와 관련시켜 소련의 대외정책을 들여다보는 시각에는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즉 소련은 후계자의 개인적 성향에 관계없이 당에서 결정된 외교정책을 밀고 나가기 때문에 지도자의 교체에 따른 정책변화가 급격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소련의 후계자들의 대 한반도정책은 이들이 대 미국 관계를 어떻게 진전시키느냐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볼 때 소련과 서방국가간의 관계가 어떻게 정립되어 가는가가 먼저 관찰되어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소련의 입장에서 한반도문제란 우선 순위에서 뒷전에 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소련의 대한정책은 당분간 소강상태를 지속할 것이며 관계개선 쪽이건 악화 쪽이건 간에 커다란 진전이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공통된 견해다. <문창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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