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평화유지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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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레바논이 다국적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한국의 파병을 요청했다는 외신보도는 우리로선 좀 당혹스러운 느낌이 든다. 외무부당국도 『아직 파병을 공식으로 요청 받은바 없으며 요청이 오면 그 때가서 검토할 문제』라고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평화유지군이 레바논에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느냐에 대해선 벌써부터 여러가지 논의가 있었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3개 국군 3천 8백 명으로 구성된 평화유지군은 PLO의 레바논 철수 감시임무를 끝내고 일단 철수했었다.
그러나 곧이어 우익 민병대의 PLO 난민 학살사건이 일어나자 재파유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결국 평화유지군은 레바논사태의 안정이라는 대국적 측면에서 보면 이제까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있으며 그 임무는 극히 제한적이다.
최근 평화유지군의 증강을 선도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아민·제마엘」레바논 대통령이다. 그는 아직도 레바논영내에 주둔 중인 7만 명의 이스라엘군과 3만 명의 시리아군을 철수시키지 않고서는 레바논에 영원한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을 간파하고, 이들을 철수시키는 유일한 압력수단으로 평화유지군의 증강을 주장하고있다.
이 같은 「제마옐」의 구상에 따라 이미 병력을 파견 중인 미·불·이에 사전 의사타진이 있은 것으로 외신은 전하고 있다. 이들 자신은 추가파견을 주저하고 대신 한국,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등의 병력파견을 「권유」하는 형편인 것 같다.
기존 파병국이 추가파병을 주저하고 있는 배경엔 레바논을 둘러싼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의 무력충돌 가능성도 한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거기다 국제적 이해가 미묘하게 작용하는 말초적 분쟁지역이라는 면도 있다.
이 같은 사정을 고려할 때 한국의 평화유지군 참여문제는 공식요청이 있더라도 매우 신중한 검토를 요하게된다.
우선 평화유지군이라는 명분은 명예로운 임무로 평가된다. 그러나 중동정세에 관한 장기적인 안목의 판단이 앞서야할 것이다.
이스라엘이나 시리아군은 아직도 레바논에서 영향력 행사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제마옐」의 희망대로 평화유지군이 증강되어도 과연 효과적인 임무수행이 가능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레바논을 비롯한 중동분쟁에서 미국과 소련, 아랍권과 이스라엘은 지금도 이해가 엇갈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따라야할 것이다.
특히 우리는 지금 국방비로 GNP의 6%, 예산의 3분의 1을 쓰고있는 실정이다. 북괴의 도발에 대비하는 우리의 방어태세에 비록 많지 않은 수의 병력이나마 잠시 해외로 빠지는 것이 바람직스런 일인가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이 같은 사정에서 중동분쟁의 관련국도 아닌 우리가 섣불리 해외 파병길에 나선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못된다.
오히려 우리는 레바논의 전재복구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고 싶다. 10여년에 걸친 레바논내전과 지난 6월의 이스라엘군의 PLO소탕전으로 레바논의 남부지역은 황폐화되다시피 했다. 전재복구에만 5년의 세월에 1백 30억 달러 내지 3백억 달러의 복구비가 소요될 것으로 추측된다.
이미 중동의 건설현장에 투입될 우리의 기술진이 레바논과의 경협을 통한 전재복구에 참여한다면 오히려 그 길이 더욱 두 나라 관계를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제마옐」대통령은 지난 10월 우리의 주 레바논대사에게 『한국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한바 있다. 결국 이것이 파병을 희망한 완곡한 표현인지는 몰라도 경제협력을 통한 두 나라 사이의 긴밀한 협력관계가 보다 떳떳하고 명분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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