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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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나는 보기 위해서 태어났노라. 보는 것은 나의 직분. 탑 위에 올라 보면, 세상은 내 마음에 찼어라. 나는 멀리 본다. 또 가까이 본다. … 두 눈이여. 그대는 무엇을 보았는가'.

'파우스트'의 한 대목이다. 괴테는 임종 직전 완성한 이 책에서 그의 눈으로 탐구한 우주와 인생의 의미를 얘기한다. 파우스트는 100세에 눈을 잃지만 오랜 방황 끝에 진리를 깨달은 내면의 눈은 도리어 빛난다.

눈은 인식의 도구다. 감각기관 중 가장 뛰어나다. "눈은 귀보다도 더 확실한 증인"이라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그러나 눈으로 같은 걸 본다고 해서 인식이 같은 건 아니다. 23일 외신이 전한 미국 미시간대학의 실험 결과를 보자.

연구진이 밀림의 표범 사진을 제시했을 때 유럽계 미국인 학생들의 시선은 표범에 쏠렸다. 중국계 학생들은 배경을 살피고 나서 표범을 봤고, 배경을 다시 바라봤다. 미국인.일본인들에게 물속 풍경사진을 보여주고서 뭘 봤느냐고 물었더니 미국인들은 "송어 세 마리"라고 답했다. 일본인들은 물의 색깔과 흐름, 바닥의 자갈에 대해 얘기한 뒤 송어를 봤다고 했다. 동서양의 눈은 이렇게 다르다.

연구진은 "서양인은 사물에 초점을 맞추고 동양인은 전체 맥락을 본다"고 분석했다. "그건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차(茶)를 더 권할 때 미국인은 "차 더 어때(More tea)?"라고 말한다. 중국인은 "더 마실래(Drink more)?"라고 한다. 서양은 명사, 동양은 동사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이 중 어느 쪽이 나은지 따질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안목이다. 청태(靑苔.푸른 이끼)가 두꺼운 고택(古宅)을 보고 재개발을 하자는 눈이 있는가 하면 거기서 역사의 숨결을 읽는 눈도 있다. 돈을 삶의 목적으로 보는 눈이 있는 반면 "돈은 삶의 12분의 1에 불과하다"(오 헨리 단편집)고 하는 눈도 있다.

우리 지도자의 눈은 어떨까. 과거의 숲 가운데 굽은 나무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탑 위에 올라 미래를 볼 수는 없는 건가. 앞으로의 행보는 더 정치적일 거라고 하는데 이젠 '경제와 민생의 눈'에 불을 켜는 게 직분에 합당하지 않을까.

이상일 국제뉴스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