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와 용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서울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는 경찰관 2명의 목숨도 함께 앗아갔다. 두 명 다 마포경찰서 소속. 김유연 경사는 31살, 황재하 상경은 20살, 모두 젊은 나이였다.
이들은 질식해 숨진 인부 3명을 구하러 맨홀에 뛰어 들었다가 자신들도 같이 숨진 것이다.
사고자체는 우리 사회의 무지와 방심을 또 한번 드러낸 것이지만 이들의 희생과 용기는 공인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를 엄숙히 교훈 한다.
공인으로서 좀 더 용감한 행동이 아쉬웠던 적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으로서 목숨을 거는 용기가 그렇게 쉽겠느냐고 관대히 이해해 온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엔 포토믹 강의 「대머리 신사」의 미담이 인구에 회자됐었다. 얼음 속에 가라앉은 비행기에서 자기에게 내려진 구명 밧줄을 두 번이나 남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조용히 물밑으로 숨져 간 사람이다. 그는 공인도 아니고 승객을 구조할 책임도 없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약삭빠른 이해타산과 이기주의가 활개치는 세상에서 가끔씩 나타나는 용기 있는 행동은 한줄기 청량한 소나기와 같다. 세상은 그래도 의로운 사람들이었다는 인생의 긍정적 평가를 새삼 확인시켜준다.
『위대한 업적은 지혜보다도 용기 때문에 이룩되는 것이 많다』-. 독일 속담이다. 실제로 용기는 계산 됐다기보다 본능적으로 솟아 나오는 경우가 많다. 철길에 뛰어들어 어린이를 구하는 모성애 등이 바로 그것이다.
신학자 「파올·틸리히」는 『비록 행동의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용기 있는 행동은 존재의 근거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뒤집어 해석하면 용기 없는 사람은 존재조차 의심받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번 더 「틸리히」의 말을 되씹으면 용기의 분별성을 생각하게 된다. 분별없는 용기는 곧 만용. 폭력 같은 것이 바로 이에 속한다.
이들 2명의 용기 있는 행동을 찬양하면서 당국의 사려 없는 재해구원대책을 다시 한번 개탄한다. 이들이 착용한 방독마스크가 유독가스로 가득 찬 밀폐된 공간에선 사용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가스 속에서도 착용할 수 있는 방독면을 사용했던들 이들의 고귀한 두 목숨은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 이들의 용기는 높이 평가 할만 하지만, 평소 마스크 하나 적절하게 착용하는 소양교육이 얼마나 부실했는지 알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