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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성급한「지수청신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수경기는 모처럼 청신호를 켜고 있다 .한국은행이 작성한 9월중 경기예고지표는 3년 3개월만에 l.1을 기록했다. 1.0이하를 침체로 분류하니까 이 기준대로라면 국내 경제는 이제 안정권으로 진입, 한시름 놓았다는 이야기다.
사실 각종 지표상으로도 수출의 부진을 재외하고는 눈에 띄게 호전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소비가 크게 활기를 띠고 있고 건축허가 면적 중에서 투자와 직결되는 공장용 건축허가면적이 지난 해 같은 때에 비해 35.3%나 늘어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수치다.
계속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던 생산과 출하량도 9월부터는 각각 3.5%, 4%의 안정된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물가 또한 농산물의 풍작과 공산품 값의 안정으로 10월중에는 소비자·도매물가 모두 내림세를 보였다.
이 같은 수치를 토대로 관계당국자들은 자신만만하게 본격적인 경기회복을 장담하고 있다.
분명히 건축경기의 재생을 기반으로 해서 내수부문은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는 것 같다. 수출이 부진한 것은 사실이나 이 같은 내수경기의 회복세가 내년 상반기까지만 끌고 나가줄 경우 그때가면 수출도 괜찮아지지 않겠느냐는 추리다.
그러나 지표물의 배경을 뜯어보면 이 같은 성급한 낙관론을 펴기에는 아직도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최근의 경기회복세는 자생적인 것이라기보다 통화공급의 확대에 의존한, 유인된 회복이라는 점과 추석대목까지 겹쳐 경기를 부추겼다는 점 등을 감안해야 한다.
30%를 넘는 과도한 통화공급이 6개월간이나 계속되는 가운데 경기가 이 정도 떠오르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결과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계속 줄기만 하던 소비가 9월들어 14.7%(서울 도·소매액 지수)나 늘어난 것도 결국 통화증발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
또 이 같은 증가율에는 금년 추석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보통 추석낀 달의 전월이 대목인데 작년에는 9월에 끼었던 추석이 이번에는 10월에 끼었기 때문에 올해 9월중의 경기는 상대적으로 더 풍성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꺼림칙한 것은 오히려 과열이라고 할 만큼 폭발적인 증가를 나타내고 있는 건축허가 면적이다.
9월중 건축허가면적은 작년 같은 때에 비해 무려 85.6%가 늘어나 3백80만평에 이르렀다. 부동산투기가 한창 일기 시작했던 76년 3월의 3백62만평의 종래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하도 지리했던 침체의 늪에서 단숨에 만회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것이 너무 지나치니까 문제다. 이 같은 건축허가면적 급증의 배경에는 순수한 경기회생의 측면보다도 저금리를 외면하고 실명제를 피해서 부동산 쪽으로 돈이 몰렸고 이것이 투기화 하면서 벌여놓은 엉뚱한 집짓기 경쟁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가 0.2% 떨어졌다고 하지만 최근들어 20% 안팎이 오른 집값은 반영되지 않았다.
어쨌든 내수와 관련된 지표들은 생산·출하·투자·자금사정 등 대체로 호전되고 있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더욱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수출부진이 문제다.
9월중에 지난 해 같은 때에 비해 2.2%가 줄었던 신용장내도액은 10월들어서 또다시 6.6% 가 감소했다. 워낙 세계경기회복이 더딘 탓도 있겠으나 미국 금리가 떨어지면 함께 내릴 줄 알았던 달러 값이 계속 강세를 보이는 바람에 가뜩이나 어려운 수출의 목을 죄고 있는 것이다.
당분간은 내수로 버텨나간다고 하지만 우리의 경제구조상 수출이 계속 부진을 면치 못하는 한 그 한계는 뻔한 노릇이다. 당국이 분석한 바로도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 경제는 전후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하는 등 계속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으니 우리의 수출도 시원한 회복세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결국 최근의 경기부상이 그동안 계속된 통화공급확대나 각종 지원대책에 의한 성과로 일단 평가받을 수 있겠으나 아직은 지수만 가지고 침체를 벗어났다고 장담하기에는 성급한 단계다.
돈을 풀어서든, 세금을 깎아줘서든 정책적인 촉매를 통해 회복된 경기가 자체 추진력을 갖게되기까지에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려야 할 것이다.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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