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의 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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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레이건」대통령의 아들이 실업자가 되었다는 외신보도가 있었다. 누구의 아들이라고, 화제가 될 만도 하다.
그러나 화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한마디 뉴스 속에 함축된 의미들이 재미있다.
첫째, 대통령의 아들이 가진 직업. 올해 24세의 「로널드·프레스컷·레이건」이라는 그 아들은 이제껏 뉴욕에 있는 조프리발레 회사의 댄서였다. 댄서라는 직업이 뭣해서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기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그는 여전히 댄서의 직업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돋보인다.
둘째, 대통령의 아들을 직장에서 그만두게 한 그 회사의 결단(?). 「론」(애칭)이 해고당한 마지막 차례였는지, 아니면 처음의 차례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뭏든 「레이건」대통령의 아들이 회사에서 쫓겨났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세째. 그 아버지와 그 아들. 「레이건」대통령도 역시 세상의 뭇 아버지와 다름없었다. 그는 실직자가 된 아들을 도와주려고 했다. 그쯤 되면 돈도 줄 수 있고, 취직 자리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론」은 한마디로 말했다. 『뇌!』-.「제 문제는 제가 처리하겠읍니다』는 태도였다. 아버지「레이건」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 네 말이 옳다!』고 했다. 오히려 그런 아들을 높이 평가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네째, 「론」은 뉴욕주 노동청에서 주는 실업수당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그라고 줄서지 말라는 법은 없다. 미국의 실업자가 1천만명을 넘고, 실업률도 42년만에 최악의 기록이라는 10.1%라는데, 그도 실업자면 당연히 그 길고 긴 줄에 서서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뭏든 그 사실이 신기해 보인다. 「론」이 실업자의 대열에 서서 우두커니 돈을 타러 기다렸다니 말이다.
백악관 대변인까지 그런 기사 작성을 거들어 준 것을 보면 정치적인 프로퍼갠더의 의미도 없지는 않다. 미국 국민이 겪고 있는 현실을 바로 백악관에서도 함께 겪고 있다는 시위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몇 줄의 뉴스를 뒤집어 보면 민주주의를 따로 교과서에서 배울 필요가 없다. 이런 얘기야말로 살아 있는 교육이다.
요즘은 바람둥이로 소문이 나 다소 손명은 되었지만 영국 왕실의 「앤드루」왕자가 포클랜드 전쟁에 출정했던 얘기도 있었다. 그는 헬리콥터 조종사로 전장에 뛰어들었다. 설마 시늉만 그렇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 회사나 기틀이 제대로 잡히려면 저마다 솔선 수범하는 습성이 앞서야 한다. 한사람의 귀감은 책에 씌어져 있는 스무 개의 교훈보다도 더 가치가 있다.
중국 고사에도 이런 말이 있다.『동으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바로 잡을 수 있고, 옛날을 거울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 사람으로 거울을 삼으면 득실을 알 수 있다』(당태종·십팔사략).
동서고금을 통해 옛말 치고 빈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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