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로 끝난 연극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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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6회 대한민국연극제가 12일 극단「산울림」의 『츄라비의사람들』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8월19일부터 55일간에 걸친 긴 연극제는 올해도 여전히 미진한 여운을 남긴 아쉬운 연극제였다.
연극제를 끝낸 결산은 연극제에 건 기대와 열성만큼 좋은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는것이 연극계의 결론이다.
올해 연극제의 특징은 참가작품의 주제와 소재, 배경등이 다양했다는 것.
땅을 지켜온 농촌여인의 애기(『농녀』), 역사에서 소재를 딴 것(『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 『사슴나비』 『언챙이곡마단』), 실제의 살인사건과 사회실상을 그린 사회극(『신화l900』 『어떤 사람도 사라지지 않는다』 『쥬라기의 사람들』), 그리고 설화에서 소재를 딴것 (『터』) 등이다.
그러나 올해의 연극제가 단순한 「문화행사」에만 그쳤지 그야말로 범연극계의 연극축제가 되었었느냐 하는것엔 회의적이다. 작품의 수준에 대해서도 예년에 비해 결코 향상되었다고 볼수 없다는 것이 연극인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상업연극에서 예술 일변도의 연극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참가작품의 대부분이 흥행에만 목적을 둔듯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부조리극이니 풍자극이니 하는 주제를 내세워 저질 코미디같은 내용의 연극이 공연된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있다.
김우옥씨(연출가·동낭레퍼터리극단대표)는 올해 연극제에 대해 『우리 연극계의 취약점을 집약시켜 드러낸 한국연극의 현주소를 살펴볼수 있는 기회였다』고 했다.
또 극단 「현대극장」같은 경우엔 연극제행사가 계속되는 도중에 연극제에 참가했던 연극을 다른 극장서 공연, 많은 연극인들과 다른 극단의 지탄을 받기도했다.
「현대극장」의 처사에 대해 다른 극단들은 모임을 갖고 『연극제 참가작은 문예진흥원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연극제 기간중 다른 곳에서 공연한다는 것은 공연질서와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합의했지만 「현대극장」측은 이를 금하는 명문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그대로공연을 계속하고있다. 『돈벌이만 급급한 인상을 주는 이런 행위가 연극제행사에 찬물을 끼앉었다』고 뜻있는 연극인들은 말했다.
결국 올해의 연극제는 연극발전을 위한 행사와 누구나 즐겁게 관람할수 있는 축제였다기 보다는 한국연극의 모순이 무엇이며 어떻게 개선돼야 하는가를 모두에게 생각할수 있게 한 자리였다고 연극인들은 말하고 있다.
희극에도 문제점이 많았다. 전에는 그나마 다양한 실험이 있었는데 올해는 리얼리즘쪽이주종을 이루었다.
연극평론가 유민영교수(단국대)는 『작가들도 안목이 좁고 하고싶은 얘기가 가슴에만 응어리졌지 연극으로 풀리지 않았다』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우회하니까 작품의 색깔이 비슷해졌고 어떤 주제가 연극으로 충분히 소화되지 못하고 설익게 전달, 설교조가 되어버렸다』고 했다.
연출 역시 안이한 작업을 한것 같다는 분석이다. 대담성·모험성을 찾기 힘들었고 관객에게 쉽게 접근하려고만 한것이다. 연출자의 역할은 주어진 희곡을 창조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라 할수 있는데 대부분 희곡에 모범답안을 작성한것이 고작이란 평이다.
올해 연극제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과거 연극제엔 신인이나 소장배우들이 주로 출연했으나올해엔 중견·중진급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는것이다. 그러나 연기술의 향상을 기대할만한 특출한 연기는 나오지 않았던것도 지적할만한 일이다.
연극협회이사장 김정옥씨는 『연극제를 제한된 공간에서 하지말고 일정기간 동안 어느곳 어느 형태로든 보다 많은 극단들이 참여할수 있게 하여 명실공히 축제분위기를 조성해야 할것』이라며 『연극제 기간동안 비평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연극인 모두가 참여해야만 진정한연극인의 축제가 될수있을것』이라고 했다.
연극제에서 드러난 문제점등은 바로 한국연극 전체의 문제인만큼 중지를 모아 개선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 연극계의 공통된 의견들이다. <김준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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