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통역 자원봉사하려 영어학원 10년 다녔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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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중고 자동차 판매상인 김상형(59)씨는 주변에서'의지의 한국인'이라 불린다. '영어 완전정복'을 목표로 지난 10년 동안 죽기살기로 영어 공부에 매진해 온 뚝심 때문이다.

"1996년 봄 처음으로 미국 여행을 갔는데 영어를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더군요. 입도 뻥긋 못한 채 돌아온 게 얼마나 창피하던지…. "

김씨는 귀국 즉시 모 영어회화 학원에 등록했다. 6단계로 짜인 정규 회화과정을 1단계부터 밟기 시작해 최고 단계까지 3년 만에 졸업했다. 중도 탈락자가 많아 100명당 한 명밖에 안 되는 졸업자 명단에 나이 쉰이 넘은 최고령 학생이 낀 것은 상당한 화제가 됐다. 게다가 주 5일 수업을 단 한 번도 빼먹지 않은 그의 성실성에 어린 학생들은 혀를 내둘렀다. 정규회화반을 졸업한 후에도 자신의 영어 실력이 성에 차지 않았던 김씨는 곧장 주 5일간 진행되는 자유회화반에 등록, 지금까지 7년째 거의 빠짐없이 다니고 있다.

"퇴근 길에 영어학원에 들렀다 집으로 가는 게 이제 습관이 됐습니다. 지방에 출장을 가도 학원시간에 맞춰 비행기 타고 당일에 올라오는 걸요.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 가족과의 여행도 모두 학원 방학 때로 미루고 있어요."

김씨의 영어 공부는 사실상 온종일 계속된다. 출.퇴근 시간과 자투리 시간도 EBS 라디오의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듣는데 모조리 할애한다. 어쩌다 지하철을 타도 각종 무가지에 등장하는 실용회화 표현을 찾아 외우느라 깜빡 졸 틈도 없다고 한다.

도대체 왜 그리 영어 공부에 집착하느냐고 묻자 그는 "아파트 평수, 자동차 크기에 연연하는 것보다는 훨씬 의미 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외국어 하나, 운동 하나, 악기 하나에 능숙하면 삶이 훨씬 풍요로울 것 같다"고도 했다.

"너무 늦게 시작해서인지 이제 초보를 겨우 면한 수준"이라고 자신의 영어 실력을 평하는 김씨는 "영어가 더 숙달되면 통역 자원봉사 등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며 웃었다.

글=신예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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