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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인씨<작곡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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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국내가수들은 창법을 바꿔야해요. 가사전달이 어렵게 혀 꼬부라진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던가 곡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겉멋만 들어 마이크나 휘두르는 것은 지양해야죠.』
지난68년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최근 영주권을 포기하고 국내에 정착한『목포의 눈물』『타향살이』의 원로 작곡가 손목인씨(70·본명 손득렬)는 한국적 토대가 약한 국내가요계를 거침없이 비판하고 나섰다.
『그리고 음반법안만 해도 그래요. 출판저작권법과 음반저작권법이 구분되지 못한 것도 우리 나라 뿐이지만 음반 법이라고 해서 따로 만들어져 있는 나라도 세계 유일로 한국뿐이지요.』손씨는 특히 국내음반저작권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일본저작권협회와 작가협회정회원이기도한 손씨는 연5만 달러씩의 저작권료를 일본저작권협회로부터 받고 있다고 말하면서 하루빨리 국내에도 이와 같은 제도가 정착되어 대중문화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목포의 눈물』『타향살이』외에도『바다의 교향시』『아빠의 청춘』등 세대의 한계를 뛰어 넘은 히트곡을 낸 손씨는 요즘도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고있다.
오는 크리스마스 때는 귀국 콘서트를 대대적으로 열어 바람직한 대중문화의 방향을 제시해 보겠다는 결의에 차있다.
이미 그는 콘서트를 위해 로큰롤 리듬의『추억은 어느 끝까지』『은모래 은물결』『나비의 꿈』『서울의 자장가』등의 곡을 준비하며 정통 뽕 작품의 노래로『흰 버선』『당신을 만날 때까지』등 9곡을 끝냈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손씨는 일본에서 2백만 장 이상 팔린 음반『가스바의 여자』가 있는가 하면 1백만 장 이상 판매된『하와이의 밤』도 있다.
또 국내에서 이난영 여사가 불러 크게 히트했던『목포의 눈물』도 일본의 영화배우이자 가수인「스가하라·스쓰꼬」(여·50)가 불러 50만장이 팔렸다고 한다.
『지난 68년 일이지요. 미국 팝계를 시찰하러 갔다가 당시 내가 너무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작곡생활을 한 것을 크게 깨달았죠. 그래서 좀 더 넓은 곳에서 공부할 것을 결심하고 미국에 주저앉았죠. 70년 정시 영주권을 얻어 가족도 모두 뉴욕으로 초청하고 본격적인 작곡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국에 대한 향수가 간절해지고 고국에 있는 동료들의 생각도 자꾸만 떠오르고요.』
그래서 손씨는 지난1월15일부인 (오정심·58·전 가수)과 함께 귀국해 지난주에는 주민등록까지 되살아났다고 기뻐한다.
현재 부인 오정심씨와 사이에4남1녀를 두고 있다.

<전성환 기자>
▲1913년 경남 진주 출생▲1932년 서울 중동학교 졸 ▲1936년 일본 동경소재 일본고등음악학교 졸 ▲1936년 서울 콜럼비아 레코드 전속작곡가 ▲1938년 일본 신흥키네마 전속작곡가 ▲1950년 국군전속 악단장 ▲1968년 미국 뉴욕으로 이민 ▲1982년 국내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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