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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교육의 재검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83학년도 대학입학 학력고사의 6개 외국어 과목 중에서 일본어를 선택한 수험생이 지난해에 비해 3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82년에 5·7%였던 일본어 선택이 17·3%로 늘어났다는 사질은 우선 놀랍다.
일본교과서의 역사왜곡사건으로 야기됐던 민족주체의식의 제고와「극일」정신의 고취가 한여름을 떠들썩하게 하고 난 다음이라서 일어선택의 증가추세는 묘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해서 한글학회와 같은 단체는 이에 깊은 우려를 표하고『일본에 대한 우리의 정신자세가 과거로 돌아가는 현상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태는「정신자세」와는 관계없는 이유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순리다.
일본어가 다른 외국어에 비해 학습과 득점 면에 비교적 유리하다는 인식이 학생과 교사사이에 퍼져있으며 대학의 합격률을 높여 학교의 명예를 떨치겠다는 일부 고교의 의도가 학생지도 면에 반영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일본어선택이 급증하고있는 사실은 현실적 요구가 빚은 결과라는 냉정한 인식으로 봐야할 것이다.
더욱이 우리 언론들은 바로 얼마 전까지 우리의 일본연구가가 몇 명에 불과한 것을 탄식하면서 더 많은 본격적인 일본연구를 주장하고 있었다는 것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 현실적으로 일본은 자유세계 제2의 국력을 가진 국가이며 지리적으로도 우리와 가장 가까운 나라이고 역사적 관계를 생각해서도 결코 소홀할 수 없는 나라다.
외국어 도서가운데 가장 많이 팔리는 것도 일본서적임은 현실이 되고있다.
이런 현실이기 때문에 일본어선택이 급증하고 있는 사실자체를 우려한다는 것은 기우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사태를 유도한 우리 교육정책엔 적지 않게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다.
우선 첫째는 영어, 독어, 불어, 중국어, 스페인어, 일어의 선택이 지나치게 불균형하다는 사실의 문제다.
81년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응시자가 영어를 선택했고 1%가량의 나머지 응시자만이 다른 외국어를 선택했다. 82년도엔 영어 91%, 일어 5·7%, 독어 2·3%, 나머지 불어와 중국어를 합쳐야 1%가 될까말까한 정도였다.
83년도는 영어선택은 줄고 나머지 외국어는 조금씩 늘고 있기 때문에 다행이란 생각을 하지만 일본어의 급증에 비해 다른 외국어의 증가는 미미한 실정이다.
이는 근본적으로는 문교정책의 난맥이 남은 결과다.
73년 이후 문교부가 고교교육과정에서 제2외국어를 소외시키고 서울대 등의 입시과목에서도 제2외국어가 제외되면서 일어난 외국어교육의 외면정책이 만들어놓은 결과이다.
비록 그후에 문교정책은 제2외국어교육의 필요를 인식하고 전환하고있지만 그 방향은 재검토해야할 현실이다.
중·고교에서 6년간 배운 영어와, 고교에서만 조금씩 배우는 다른 외국어를 같은 비중을 두어 대입고사에서 선택하게 하는 것도 문제다.
또 중요성으로 봐서 영어를 제1외국어 필수로 하는 것은 무리가 없으나 여타 외국어도 하나 정도는 필수로 선택토록 하는 것이 옳다는 뜻이다.
외국어를 영어 하나에 의존할 수 없으며, 해외진출의 다변화로 여타 외국어의 필요도 늘어났을 뿐 아니라 대학에서의 전문학술 교육엔 외국어 2개 정도는 기초적으로 갖추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외국의 경우도 중등과정에서 외국어는 거의 필수다. 미국에서는 불어, 독어, 스페인어가 가장 많고, 유럽에선 라틴어나 그리스어 등도 폭넓게 가르친다.
한 예로 서독의 김나지움에선 제1외국어로 영어,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 라틴어 중 하나를 필수로 하며 제3외국어로 러시아어, 스페인어를 선택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렇게 볼 때「외국어교육의 다변화와 균형」이란 목표는 지금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교육당국이 고교교육과 대입고사에서 그 점을 충분히 반영하는 노력이 있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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