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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전쟁 6개월 내 승부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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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석유 전쟁이 시작됐다. 방아쇠는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이 당겼다. 그는 지난달 27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례회의에서 “미국 셰일 붐을 꺾어야 한다”고 목청을 돋웠다. 선전포고다. 다른 회원국들이 일단 사우디를 지지했다. 하루 생산한도(쿼터) 3000만 배럴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성명서가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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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EC의 성명은 간명했다. 하지만 로이터통신은 정례회의 이틀 뒤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그날 성명서 하나로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가격 전쟁(Price War)의 시작이다. 국제 원유시장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적어도 1960년 이후 54년 새엔 거의 없던 일이다. 그해는 OPEC이 출범한 해다. 미국 헤지펀드 매체인 알파는 “앞으로 국제 원유시장이 존 록펠러가 석유왕이 되기 직전인 1880년 전후 미국 석유시장과 비슷해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을 전했다. 그때 록펠러는 기름값을 마구 떨어뜨리고 때론 폭력까지 행사하며 경쟁 회사를 고사(枯死)시켰다.

 요즘 세상에 사우디가 폭력까지 동원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가격 전쟁만은 무자비할 듯하다. OPEC의 핵심 기능까지 정지됐을 정도니 말이다. OPEC은 회원국 간 가격 전쟁을 막아 국제 유가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카르텔이다.

 블룸버그통신은 30일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사우디의 1차 목표는 셰일 에너지 회사들의 고사다”며 “이를 통해 2차 목표인 OPEC의 시장 점유율 유지와 3차 목표인 고유가 시대 복원을 꾀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1차 목표 달성 여부는 ‘누가 낮은 원가에 원유를 캐내는가’에 달려 있다. 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지역 국가들이 배럴당 27달러 정도에서 원유를 캐내고 있다”고 했다. 반면 미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셰일 원유의 생산 원가는 평균 45달러 선이다.

 블룸버그는 “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의 셈법은 간단하다”며 “국제 유가가 40달러 선까지 떨어지면 셰일 에너지 회사는 죽고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는 산다는 식”이라고 보도했다. 이를 위해 OPEC이 하루 3000만 배럴을 생산하기로 했다. 하루 100만 배럴 이상 공급 초과인 현 상태를 유지한다는 얘기다.

 사우디는 셰일 원유 생산만 중단되면 초과 공급은 없어질 것으로 본다. 실제 EIA에 따르면 미국 셰일 원유가 없으면 세계 원유 생산량은 하루 7300만 배럴까지 줄어든다. 세계 원유 소비량은 하루 7700만~7900만 배럴 사이다. 소비가 다시 공급보다 많아진다. 셰일 원유만 없어지면 기름 값은 오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제 유가가 떨어지는 바람에 이미 몇몇 셰일 에너지 회사가 생산을 포기했다. EIA에 따르면 셰일 에너지 회사들의 평균적인 손익분기점은 45달러 선이다. 국제유가가 그 이하로 떨어지면 생산을 포기하거나 파산을 선언해야 한다.

 그때가 언제일까.

 블룸버그는 “EIA 분석가 등은 원유 값이 요즘처럼 떨어지면 6개월 뒤엔 많은 셰일 에너지 회사들이 생산을 포기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석유 전쟁이 6개월짜리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사우디가 최후의 승자일지 장담하기엔 이르다. OPEC 회원국 결속이 단단하지 않다. 로이터에 따르면 한 회원국 대표는 OPEC 회의 직후 “우리가 (알나이미 셈법을) 확신하는 것으로 보이는가”라고 반문했다. 지금 뾰족한 대안이 없으니 일단 따른다는 투다. 블룸버그는 “사우디가 미국 셰일 에너지 업체뿐 아니라 원가 경쟁력이나 재정 건전성이 떨어지는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했다. 석유 전쟁으로 궁지에 몰리면 이란 등이 사우디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커 보이는 이유다.

 더욱이 사우디 등 OPEC은 6개월 뒤에 시장을 장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미국이 셰일 원유와 가스만 생산하는 게 아니어서다. 운송비 등을 감안하면 사우디산과 원가 차이가 크지 않는 원유가 미국 내에서 많이 생산되고 있다. 헤지펀드 전문매체인 알파는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저유가 시대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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