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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준, 88억 아닌 롯데를 버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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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두산이 정말로 날 원한다는 걸 느꼈다. 두산에는 친분 있는 선수들이 많다.”

 프로야구 FA(자유계약선수) 장원준(29)이 지난달 29일 두산과 계약하며 밝힌 소감이다. 속뜻을 헤아려 보면 롯데는 그를 간절하게 붙잡으려 하지 않았고, 장원준은 처음부터 롯데를 떠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2014 롯데 사태’의 완결판이었다.

 두산이 발표한 장원준의 계약조건은 4년 총액 84억원이다. 80억원이 보장액이고, 성적에 따라 매년 1억원씩 총 4억원의 인센티브가 포함됐다. 역대 FA 투수 중 최고액이며, 야수까지 포함하면 지난주 SK와 계약한 최정(4년 86억원) 다음이다.

 롯데는 지난주 장원준과의 마지막 협상에서 4년 최대 88억원(보장액 80억원, 인센티브 8억원)을 제안했다. 그러나 장원준은 “시장에서 내 가치를 평가받겠다”며 이를 거부했다. 롯데는 88억원을 제시했다는 사실을 보도자료에 적시했다. 장원준도 이에 동의했다.

 장원준과 두산의 계약은 더 놀라웠다. 두산의 제안은 보장액이 롯데와 같지만 최대액은 롯데보다 낮았다. 수년간 롯데의 에이스로 대접받았던 장원준이 돈을 더 주겠다는 친정팀을 떠난 셈이 됐다. 장원준은 “돈보다는 새 야구인생을 위한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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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 구단은 김승영(56) 사장이 직접 장원준 영입에 나섰다. 롯데에서 함께 뛴 적이 있는 두산 베테랑 홍성흔(37)도 장원준을 설득했다고 한다. 거꾸로 말하면 장원준이 10년(경찰청 복무 2년 포함)을 뛴 롯데에서는 그를 진심으로 붙잡는 사람이 없었다는 뜻도 된다. 롯데 팬들은 크게 아쉬워하고 있다. 롯데는 2011년이 끝난 뒤 간판타자 이대호(32·소프트뱅크)를 일본으로 떠나 보냈고, 이듬해 홍성흔(37)과 김주찬(33·KIA)을 빼앗겼다. 2012년 투수 정대현(34), 2014년 내야수 최준석(31) 등 영입 사례도 있지만 FA 시장에서 롯데는 대체로 밀렸다. 귀한 왼손 선발투수를 놓치자 롯데 팬들은 “토종 에이스인 장원준까지 놓칠 지 몰랐다”, “선수단 사찰하는 팀을 떠나고 싶은 건 당연하다”며 성토하고 있다.

 롯데는 장원준을 잡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FA 투수 김사율(34)과 내야수 박기혁(33)까지 신생팀 kt에 내줬다. 올 시즌 전 우승후보로도 꼽혔던 롯데는 갖가지 내분 끝에 7위에 그쳤고, 전력 보강은커녕 유지에도 실패했다.

 장원준 등 FA 3명이 모두 떠난 건 팬들뿐만 아니라 구단에도 큰 충격을 줬다. 선수가 처음으로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갖는 순간, 팀을 떠나려 한 것은 그만큼 내부에 문제점이 많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구단 프런트와 코칭스태프, 코치진과 선수단이 서로 반목하는 팀에서 뛰고 싶은 선수는 없다. 특히 내성적인 성격의 장원준은 롯데 선수들이 집단행동을 할 때마다 한 발씩 물러서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롯데는 1982년 창단 후 최악의 해를 보냈다. 지난 5월 롯데 선수단이 권두조(62) 수석코치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내분이 시작됐다. 원정 숙소의 폐쇄회로(CC)TV를 통해 권 수석코치가 선수들의 사생활을 감시했다는 이유였다. 지난달 초에는 ‘CCTV 사찰’을 지시한 게 최하진 전 사장이었다는 게 밝혀져 문제가 더 커졌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가 이를 문제 삼았고, 결국 최 전 사장과 배재후 전 단장이 물러났다. 이 사건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까지 받았다.

 구단 프런트에 눌려 있던 김시진 전 감독은 불명예스럽게 팀을 떠났다. 후임 감독으로 공필성 롯데 코치가 온다는 소문이 퍼지자 롯데 선수단이 이를 반대했다. 10월 28일 롯데 선수들이 ‘선수단-코치진-구단간 불화는 야구인 출신의 A운영부장 때문’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롯데가 사분오열되는 과정이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감독이 바뀌었고, 신임 이창원 사장과 이윤원 단장이 부임했지만 롯데의 문화가 완전히 바뀐 건 아니다. 장원준은 “롯데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했을 뿐, 팀에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

 ◆배영수 등 6명은 미계약=올 시즌 FA 19명 중 장원준을 포함해 13명이 계약을 끝냈다. 삼성을 떠난 투수 배영수(33)를 비롯해 송은범(30·투수)·이재영(35·투수)·나주환(30·내야수)·이성열(30·외야수)·차일목(33·포수) 등 6명은 새 팀을 찾지 못했다. 부자 구단 LG가 “FA 시장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혀 남은 이들의 계약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식 기자

84억원 제시한 두산으로 가
박기혁·김사율도 신생팀 kt로
CCTV 사찰에 구단·선수단 갈등
스타는 떠나고 팬들은 등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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