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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깊이 보기 : 일본 개헌 논란

일본 전문가의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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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번 8.15는 광복 60주년이자 일본의 2차 대전 패전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런데 일본 내에서 불고 있는 개헌 바람이 우리를 자극한다. 그렇다고 우리의 민족감정을 내세워 일본을 비난만 하고 있어서는 제대로 대책을 세울 수 없다. 왜 일본은 개헌을 추진하는 것일까. 일본 지식인의 눈을 통해 개헌논의의 역사와 배경, 사회적 분위기 등을 짚어본다. 미국이 일본의 개헌에 암묵적 동의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개헌이 현실화할 경우 동북아 정세에는 어떤 파장을 미칠지도 따져본다.

2차 대전 종전 60주년을 맞는 올해 일본 국회 헌법조사회가 최종 보고서를 냈다. 자민당도 창당 50주년을 맞아 헌법 개정 초안을 발표했다. 최대 야당인 민주당도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적극적이다. 그러나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고이즈미(小泉) 내각이 매우 강하게 집착을 보이고 있는 우정민영화 법안이 참의원에서 부결되면서 고이즈미 총리는 중의원을 해산했다. 9월 11일의 총선 투표일까지 자민당과 민주당은 정권을 걸고 격돌하게 됐다.

개헌을 위해서는 중.참 양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당분간 일본의 정당은 대결 국면에 들어가게 됐다. 또 선거의 쟁점은 우정민영화를 비롯한 고이즈미 정권의 구조개혁이기 때문에 개헌이 시급한 현안에서는 밀려나게 됐다. 개헌이 현실적 정치 과제로 부각되는 것은 상당 기일이 지난 다음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헌법 9조가 일본 정치에 있어 커다란 쟁점인 것은 틀림없다. 특히 미국이 추진하는 '테러와의 전쟁'에 일본이 전면적으로 가담해 자위대의 군사적 활동이 확대되고 있는 지금 헌법 9조를 어떻게 이해하고 유지 또는 변경할 것인가의 문제는 일본 국민에겐 중요한 선택이다.

?전후정치에 있어서의 헌법=일본 헌법의 특이점은 '제1장 천황(天皇)'과 '제2장 전쟁의 포기' 두 부분에 있다.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이후에도 천황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본이 전쟁 책임을 모호하게 처리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 천황제의 온존은 미국의 점령정책의 귀결이기도 했다.

그러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행한 대일본제국의 원수였던 쇼와(昭和) 천황이 전후에도 그대로 군림했다는 사실은 아시아 제국과 미국 이외의 국제 여론으로는 수용하기 힘든 것이었다. 거기서 전전과 전후의 단절을 증명하기 위한 정치적 선언이 필요하게 됐다. 그것이 헌법 9조였다. 일본은 군국주의 및 침략전쟁과 결별한다는 것이 9조의 의미였다. 그 점에서 9조는 국내적 규범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 조약이기도 했다.

전쟁에서 쓰라림을 맛본 많은 국민은 9조를 환영했다. 그러나 국민이 일치해서 9조를 지지한 것은 아니다. 9조 해석에 관해서는 세 가지 세력이 존재했다. 첫째는 9조를 글자 그대로 지키자는 순수 호헌파다. 이 그룹은 비무장이란 이상을 내세우고 사회당.총평(좌파 노동조합 연합조직) 등의 좌파 세력을 이뤘다. 두 번째는 복고적 개헌파다. 패전과 미국에 의해 강요된 헌법을 굴욕으로 느낀 사람들은 9조 개정을 추진했다. 이 그룹은 자민당 우파를 형성했다. 세 번째는 수정 호헌파다. 자민당 중에서도 개방적.합리적 정치인은 자위력의 보유는 헌법 9조 하에서도 허용된다고 말하지만, 9조의 제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외에서의 군사력 행사에 극히 신중했다. 이 그룹은 자민당 중도파를 형성했다.

1960년의 이른바 '안보투쟁'으로 미국과의 군사동맹에 대한 국민의 강한 반대가 분명해지고 헌법 개정을 내건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총리가 퇴진으로 내몰렸다. 이후 30여 년간 9조에 대해서는 수정 호헌파 노선이 정착됐다. 개헌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실시됐다.

한편 순수 호헌파도 정치세력으로서는 소수파에 머물렀다. 60년대에서 90년께까지의 자민당 정권은 9조의 해석을 바꿔 '전수방위의 자위대는 합헌'이라면서 자위대를 유지하고 비핵 3원칙, 무기수출 금지, 우주의 평화 이용 등의 평화노선을 채택했다. 또 필요 최소한의 자위력으로 대처할 수 없는 사태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다는 논리로 미.일 안보체제도 정당화됐다. 즉 9조도, 안보 조약도, 자위대도 모순 없이 공존했다.

9조와 안보조약의 병존 노선은 오랜 기간 국민의 지지를 받아 왔다. 그러나 90년대에 들면서 냉전구조의 붕괴와 함께 변화가 시작됐다. 첫째 이유는 걸프전쟁과 캄보디아.동티모르 같은 유엔에 의한 평화 유지 활동에 대해 일본이 어떻게 공헌할지의 문제였다.

특히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하는 경우 9조와의 정합성이 문제가 됐다. 두 번째 이유는 세계 유일의 초대국 미국이 중동과 인도양 등 세계 규모에서 권익과 패권을 추구하는 데 맞춰 일본에 한층 긴밀한 군사협력을 요구한 점에 있었다. 특히 9.11 테러 이후 일본은 그때그때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자위대에 의한 대미 협력을 정당화했지만 9조 해석 변경에 의한 운용은 한계에 이르고 있다.

?개헌론의 득세=90년대 이후의 개헌 논의에서는 논쟁의 주역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우선 순수 호헌파는 급속히 쇠약해졌다. 비무장이란 이상은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또 사회당은 야당이란 입장을 대전제로 순수 호헌론을 제창해 왔다. 그러나 90년대 전반의 정변 속에서 사회당이 정권에 참여했을 때 오랜 세월 비무장이란 이상론과 자위대 운용이란 현실적 과제 사이의 모순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득력 있는 논의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순수 호헌파는 지적 신뢰성을 상실해 갔다.

미국으로부터의 압력이 강해지는 가운데 수정 호헌파도 점점 힘을 잃어 갔다. 직접 전쟁을 체험한 세대의 정치인들이 은퇴하고 군사력 행사에 대해 신중한 지도자들이 줄어든 점, 미.일 우호를 금과옥조로 삼는 자민당에 미국의 강한 요구를 비켜가면서 헌법의 제약을 지키는 지혜와 교섭력을 가진 정치인이 없었다는 점 등이 그 원인이다. 이른바 해석개헌의 논리적 모호함, 9조의 문면(文面)과 자위대의 현상 사이의 괴리가 너무도 큰 점도 수정 호헌파 주장의 설득력이 약해지는 결과로 연결됐다.

그 가운데 9조의 제약을 없애 자위대를 보통의 군대로 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도 인정해 미.일 군사협력을 한층 긴밀하게 하자는 관점에서의 개헌론이 힘을 얻기에 이르렀다. 전통적.복고적 개헌론과 현대적 미.일 협조 노선이 자민당의 9조 개헌 논의를 끌어당기는 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9조 이외의 천황제 강화, 인권 억제 등에 관한 개정에 대해서는 복고적 내셔널리즘 및 권위주의와 현대적 합리주의자 간의 주장이 엇갈려 자민당 개헌안의 방향성은 명확하지 않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9조의 정신을 유지해 나가면서 자위대와 미.일 안보조약의 운용에 구체적이고 유효한 제어장치를 걸기 위해 9조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수정 호헌파의 해석개헌이란 수법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그 바탕에 있다.

'9조에 비춰 자위대가 위헌이냐 합헌이냐'는 문제는 이미 완전히 의미를 잃었다. 지금의 쟁점은 자위대를 일본 방위 이외의 목적으로 해외에서 활동하게 해야 하느냐, 해야 한다면 어떤 조건과 제약 아래에서 행하느냐의 문제로 옮아가고 있다. 자민당은 미국의 요망에 가능한 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9조의 족쇄를 벗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일 동맹 속에서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도 인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해외에서의 자위대 활동은 인정하지만 유엔에 의해 정당성의 근거가 부여되는 경우에 한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는 인정하지 않는다. 또 9조 이외의 개정에 관해 민주당은 새로운 인권 규정, 지방자치 강화, 행정관료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적극적이다.

?전망=개헌에는 중.참 양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고 돼 있다. 따라서 헌법 개정에는 초당적 합의가 필요하다. 자민당이 현실적으로 개헌을 추구할 때 큰 모순에 직면한다. 자민당의 개헌파가 자민당다운 개정안에 얽매인다면 거기에서 나온 군사우선적 또는 복고적 개정안에 야당이 찬동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거꾸로 야당도 찬성할 수 있는 온건한 개정안을 만든다면 자민당 내부의 개헌파에는 헌법을 개정할 의미가 없어지는 셈이 돼 당내 합의가 쉽지 않게 된다.

일본의 헌법 논의는 전후 일본에 대한 평가, 나아가 역사인식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또 향후의 일본 외교전략, 대미 협조의 심화냐 아시아와의 협조 중시냐 하는 선택과도 깊이 관련돼 있다. 이번 총선 결과 어떤 정권이 탄생하느냐에 따라서도 헌법 논의의 행방은 크게 좌우될 것이 틀림없다. 만약 자민당이 분열되고 정당 구도가 재편된다면 개헌은 정당 집결의 기축으로서 다시 한번 부상할 것이다.

◆야마구치 지로 (홋카이도대 법학부 교수)=1958년 오카야마(岡山)현 출신으로, 도쿄대 법학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84년부터 홋카이도대에 재직 중이다. 활발한 저술 활동과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일본 정치 개혁의 진로를 제시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후정치의 붕괴' '정치개혁' '일본정치 읽는 법' 등이 있다.

개헌 초안 골자

▶제9조 2항(육.해.공군 등 전력 보유 및 교전권의 금지 조항) 폐기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인정

▶제9조의 명칭을 '전쟁 방기(포기)'에서 '안전보장'으로 변경

▶헌법 해석으로 집단적 자위권 인정해 동맹국의 무력분쟁 시 파병 근거 마련

▶자위군의 국제 협조 활동 참가 허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