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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로 유라시아 횡단, 또 다른 나를 만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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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7일 김현국씨가 자신의 오토바이 ‘구스(goose)’위에서 활짝 웃고 있다. 배기음이 거위소리와 비슷해 붙인 별명이다. [강정현 기자]
지난 6월 러시아 남동부 치타로 가는 도중 백미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 길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강정현 기자]

‘추운 평원, 구불구불한 자작나무, 물웅덩이… 끝없는 타이가 숲은 얼마나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까’(안톤 체호프, 『사할린 섬』) 1890년 러시아 극작가 체호프는 시베리아 횡단 여행 중 보이는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가 지나간 길을 따라 오토바이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홀로 달린 사나이가 있다. 여행자 모임 ‘당신의 탐험’ 대표인 세계탐험문화연구소장 김현국(46)씨다. 옷가지와 침낭·지도 등과 현금 1000달러만 지닌 채 그가 5개월간 달린 거리는 총 2만5000㎞에 이른다.

 김씨는 지난 6월 7일 부산에서 대형 오토바이(652cc)를 타고 여행을 시작했다. 강원도 동해시에서 배를 통해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동한 뒤 오토바이 대장정의 시동을 걸었다. 두 달 만에 모스크바에 다다랐고, 핀란드·스웨덴·독일 등을 거쳐 10월 10일 최종 목적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유럽 총 10개국)을 찍었다. 거기서 다시 모스크바까지 되돌아온 뒤 기차와 배를 타고 지난 3일 부산에 도착했다.

김씨는 “한반도에서 유럽에 이르는 육로를 개척하고 싶어 여행을 결심했다”고 했다. 유라시아 횡단 육로를 이용하는 물류운송이 비행기나 배·기차에 비해 얼마나 큰 경쟁력이 있는지 직접 실험해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4년간 러시아에서 무역업체를 경영해 큰돈을 벌기도 했다는 그는 “800년 전 칭기즈칸은 역참제를 통해 2주 만에 물류운송이 가능한 제국을 건설했다”며 “2010년 러시아 횡단도로가 완성되고 2014년 한·러 무비자협정이 체결되는 것을 보며 새로운 실크로드가 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시베리아 오토바이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6년 대학 졸업식 직후 러시아로 떠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횡단했다. 18년 만에 다시 도전한 그 길은 많이 변해 있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오토바이를 세관에서 찾고 여행허가를 받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계속되는 경찰 검문으로 유치장 신세도 자주 졌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3일 만에 모든 수속을 밟고 간단한 입·출국 절차만 거쳐 매일 400~700㎞를 달릴 수 있었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포트홀(Pothole·도로 표면의 구멍)의 위험과 끈질긴 모기떼가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를 달리며 길 안에 갇혀버릴 것 같다는 공포였다고 한다. “여행이란 내 안에 있는 수없이 많은 나와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1인 창무극’의 선구자인 고(故) 공옥진 여사의 조카인 김씨는 집안 형편이 사춘기 시절 기울어지며 방황했다. 힐링을 위해 선택한 게 여행이었다. 유라시아 대륙으로 눈을 돌린 건 독립군으로 활동했던 큰아버지가 어렸을 적에 해준 이야기 덕분이란다. 그에게 시베리아는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의 땅이자 제2의 고향이다.

 김씨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청년들이 도전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20명 규모의 청년원정단을 꾸려 2016년 대형 트레일러로 러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여행 중 겪은 이야기들을 담은 책도 곧 출간할 예정이다. 아시안 하이웨이 6번도로(AH6)는 부산에서 강원도 강릉까지만 이어져 있다. 남북 통일로 이 도로가 연장되면 원산을 거쳐 북한 땅 전체를 달려보는 게 또 다른 꿈이다.

 “남과 북의 분단으로 한반도의 역사가 정체돼 있지만 시장(市場)은 기다리지 않습니다. 빨리 통일이 돼 그 길을 달려보고 싶네요.”

글=장혁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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