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이 지배하는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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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이렇게 「한」이나 「시름」을 풀면 거기에서 「신바람」이 난다. 「한의 문화」는「푸는 문화」로, 푸는 문화는 「신바람」의 문화로 이어진다. 그래서 한국인에겐 너 나 할것 없이 조금씩 무당기질이 있다. 신이 오로기만 하면 시퍼런 작두위에서 몇시간씩 춤을 추는 무당처럼 무서운 힘이 솟아난다.
꽃이 피거나 단풍이 들면 어디에서나 볼수 있듯, 사람들은 흔들리는 관광버스에서도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신명을 낸다. 근심이 태산같고 먹을 것이 없어도 어디서 저 해일같은 신명이 솟아오르는 것일까.
한국인이라면 젖만 떨어져도 누구나 으쓱으쓱 어깨춤을 출줄 안다.
풀이 문화의 원동력인 신바람은 생명의 근원적인 율동에서 솟아나오는 힘이다. 푸는것이 아니라 인간을 죄는 「긴장문화」인 일본문화는 그 힘을 죽이고 잿더미 위에 문명의 궁전을 세웠기때문에 번영은 있어도 기쁨이 없고, 정복은 있어도 행복이 없는 죽은 문화로 전락하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그 가락에서 신명이 우러나오는 한국문화는 비록 가난해도, 억압을 받아도, 폭포처럼 쏟아지는 영혼의 진동이 있다.
다만 지금까지 정치가가 어깨춤을 죽이고 이 민족을 다스리려 하였기 때문에, 다만 기업가가 가락을 죽이고 고용인들을 부리려 했기 때문에, 다만 아버지가 아들을, 선생이 학생을,남편이 아내를, 신바람을 죽이고 이끌려고 하였기 때문에 한국민족은 그 엄청난 창조력상 역사강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풀어야 힘이 나오는 민족을 일본문화의 경우처럼 죄었기 때문에, 신명이 줄어버렸던 것이다.
바람이 서서히 이제는 풀이의 문화쪽을 향해서 불어온 세계사를 놓고 보면 한때 창끝으로 세계를 지배한 영웅들이 설치던 시대가 있었다. 무력정복의 시대다. 또 한때는 약삭빠른 장사꾼들이 세계를 턱끝으로 구슬리던 시대가 있었다. 상업주의시대다. 또 한때는 공장의 높이로, 그 연기의 힘으로 세계를 손아귀에 넣은 산업주의시대가 있었다. 만들어 내는자가 승리자가 된다.
그러나 탈공업화 사회에서는 긴장과 그 억압을 풀수 있는자가 살아남게 될것이다. 풀지 못하는자가 패자가 되고 「풀이 문화」속에서 사는자가 큰소리 치는 시대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지금 세계적으로 3차 산업이 각광을 받고있는 이유하나만 놓고봐도 알수있다.
이익으로 사는 시대가 아니라 흥과 신명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오리라. 일본이나 서구문화에는 풀이의 전통이 없지만 우리에겐 천년, 2천년의 뿌리깊은 역사가 있다. 지금까지는 우리의 풀이 문화가 겨우 욕이나하고 춤이나 추는 푸닥거리나 하는 감정해소의 부정적인 측면에서만, 그리고 원시적인 무당문화에서만 그 싹을 보이고 있지만 이제는 모든 문화에 창조적인 꽃을 피울때가 된 것이다. 『쥬우신구라』의 드라머는 47의사가 원수를 갚고 자신들도 배를 갈라 죽는 유혈로 끝나버렸지만 이도령과 재회한 춘향이에게는 그 춘향이의 치마폭에서 신바람의 춤이 남아있다. 내일의 생명이 잉태된다.
꾀꼬리는 울어야 멋이 있고, 공작새는 날개를 펴야 제값이 난다. 풀어야 힘이 솟는 민족을 일본식으로 죄어왔던 식민지의 그 역사에 이제 우리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신은 황량한 사막에 석유의 에너지를 묻어놓았다. 이와같이 한의 역사속에 미래를 창조하는 에너지가 매몰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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