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전」이후의 중공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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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1일에 끝난 중공당의 제12차 대회(12전대회)는 당의 혁명 1세대의 사실상 퇴진, 집단지도체제의 채택 등 중요한 정치적 변화를 결정했다.
이러한 정치적 지각변동을 또 다른 측면에서 해석하자면 등소평이 내건 실용주의 노선을 밀고 나가기 위한 포석이라고 할수 있다.
경제운용방식을 바꾸어 경제건설에 중점을 두자는 경제정책의 변용이 북경에 있는 것이다.
이는 등소평의 『선민생 후부국』이라는 표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시피 우선 국민생활을 안정시키고 경제적 번영을 기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그것이 중국공산당이 지향해야할 혁명의 주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중공은 등소평 등장이후, 농·공업생산에 부분적인 이윤추구 동기를 용인하는 등 시장경제원리를 약간 가미해왔었으며 서방자본, 기술을 받아들이는 등 경제개방정책도 취해왔다.
주은래 전 수상이 70년4월 주4원칙을 내걸고 정경불가분을 고집해왔던 것과 비교하면 완전히 1백80도의 전환이나 다름없다.
이번 12전대회는 등노선의 재확인뿐만 아니라 개방정책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지난8일 발표된 당의 신규약에는 당의 주무로서 『공업·농업·국방·과학기술의 4개 근대화 실현』을 강조하고 경제건설을 우선 목표로 설정하고있다.
『선민생 후부국』의 내용이 2천년까지 중공 GNP를 현재의 3천7백40억달러에서 1조4천7백40억달러로 늘릴 계획이라고 숫자를 명시한 것이라든가, 등소평이 『쥐를 잡는데는 흰 고양이나 검은 고양이나 마찬가지』라고 비유한 것을 보면 경제건설을 향한 실용주의노선의 집념을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중공이 경제건설을 표면에 내세운 것은 실용주의 선택에도 불구하고 중공의 경제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있고 그로 인해 79년이래 올해까지 4년간 내리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자극받은 것이다.
중공경제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의 하나는 당의 경제정책 간여가 생산의 비효율성을 만연시키고, 기술수준의 저위로 산업근대화가 여의치 못한데 있다.
중공이 일본으로부터 자본을 들여와 건설키로 했던 석유화학, 제철플랜트가 연기되거나 2천2백억엔에 달하는 파기통고가 80년중에 있었던 것이 좋은 사례다.
애당초 기술수준의 낙후와 내자의 뒷받침도 애로였지만 근본적으로는 공산경제가 안고있는 비효율성이 산업고도화의 장애물이었던 것이다.
중공이 12전대회를 통해 공산경제의 폐단을 시정하겠다고 선언한데 대해 서방관측통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10억의 대시장이 열리지 않나 하는 기대를 걸고도 있다.
그러나 위의 신규약 가운데는 『중국공산당의 전반적 임무는 전국 각 민족인민을 결집하여 자력갱생, 각고 분투하여…』 4개 현대화목표를 실현하고 사회주의국을 건설한다는 전제를 달고있다.
앞서 말한 4개 현대화계획에도 지켜야할 한계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구절이다.
중공이 계획경제의 특성까지 방기한다는 것은 아니며 서방경제권과의 교류도 그러한 테두리를 멀리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을 가능케 한다.
중공이 공산경제와 제한된 시장경제를 혼합한다하나 지금 동구권경제가 겪고 있는 경제적 난국을 피해나갈 수 있을 정도로 잘 운용할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렇더라도 중공의 경제정책이 대외지향적이 되어간다면 우리와 수출시장에서 경합되기도 하고 보완되기도 할 소지가 많으므로 앞으로 주의깊게 그 추이를 지켜볼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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