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 안맞는 백악관 트로이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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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레이건을 움직이는 사람들, 백악관의 3총사, 미국의 실질적인 대통령 등으로 불리고있는 3명의 미 대통령보좌관 사이에 불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한때는「가장 화목한 트로이카」로 칭송받았던 백악관팀에 삐걱거리는 마찰음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수석보좌관 제임즈·베이커의 실용주의적 사고방식과 대통령자문역 에드윈·미즈의 보수론이 정면으로 대립되면서부터다. 여기에 지난1월 레이건의 오랜 친구인 윌리엄·클라크가 국가안보담당 특별보좌관으로 들어서면서 진용이 사두마차로 바뀌게되자 세력다툼이 치열해졌다.
베이커의 일은 백악관의 전반적인 기능을 총괄하는 것이고 미즈는 정책입안문제, 디버는 대통령의 일정을 작성하는 등의 업무분담이 돼있고 모두 동급의 직위였으나 클라크의 등장으로 서열문제가 새롭게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클라크를 등용한 것이 레이건의 결정적 실책이었다는 비판론자도 있다. 시간과 노력의 낭비는 물론 쓸데없는 언쟁의 소지를 만들어 주었다는 얘기다.
상하관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베이커와 미즈 사이의 알력은 불가피하고 레이건 행정부의 실질적 수상역할을 맡은 미즈의 수완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베이커가 미즈의 일을 가로채 선수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미즈 또한 베이커에 대해 의도적인 방해공작을 벌인 적도 있다.
이 이전투구식 싸움은 한때 포드 전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던 베이커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레이건의 중요계획에까지 영향을 미치려한다는 사실을 보수파들이 감지하면서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두 사람은 모두 이같은 불화설을 부인하고는 있지만 이들의 바로 아래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간관리들 사이에서는 두파로 갈라진 싸움의 양태가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베이커사단 참모들은 최근 백악관 안의 서열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는다면 사임하겠다고 말하는 등으로 은근히 베이커를 레이건 다음의 제2인자로 승격시켜줄 것을 갈망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한편 디버는 베이커편을 들고는 있지만 일선에 나서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고있고 클라크도 중립노선에 서서 이들의 다툼을 예의 주시하면서 적당한 기회에 베이커처럼 제2인자가 되기를 노리고 있다.
싸움의 결판은 연말이 고비라는 게 백악관 관전자들의 일치된 견해. 한 관리는 『백악관과 행정부 고위인사들이 곧 단행될지도 모를 대대적인 개편을 앞두고 모두 고양이처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표현했다.
백악관 관리들은 「실용파와 보수파의 전쟁」으로 불리는 이 싸움이 11월 중간선거 때까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 결국 선거후에 레이건이 이들을 포함한 백악관 비서진과 행정부의 일부 각료들을 갈아치우는 대수술을 단행할 것으로 기대하고있다.
워싱턴의 정치분석가들이 레이건의 백악관운영을 매우 훌륭한 솜씨로 평가한 것은 불과 1년 전의 일. 특히 전임자인 카터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신경을 쓰지않고 주요한 정책결정에만 직접 관여해온 레이건의 태도를 높이 샀으나 요즘은 그가 일상업무에서 점점 멀어져 대통령이 「인의 장벽」으로 둘러싸이고 있다는 우려마저 낳고있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레이건의 집무시간은 19개월전 취임당시에 비해 훨씬 짧아졌다. 그는 월·화·목요일에만 상오9시∼하오5시의 근무를 할뿐 수요일에는 승마나 낮잠, 주말에는 대부분을 캠프데이비드별장에서 휴식으로 보낸다. 휴가도 너무 잦아 대통령이 된 후 근 l백일을 샌타바바라 휴양지에서 소일했다.
더군다나 클라크를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으로 앉힌 뒤부터는 외교문제에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지난번 미-중공 공동성명을 자신이 직접 초안을 각성하기까지 했다.
이에 따라 백악관과 행정부내부에 대해서는 레이건이 거의 신경을 쓰지않기 때문에 그를 둘러싼 보좌관들 사이에서 빚어지고 있는 암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레이건과 고위보좌관들의 심중을 점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결말을 예고했다.
▲베이커=자주 그만두겠다고 말은 하지만 정부를 떠날 생각은 없다.
그가 백악관에서 흡족할만한 지위를 얻지 못한다면 레이건에게 장관자리를 요구할 것이다. 법무장관이나 CIA국장쯤이 그가 원하는 자리일 것이다.
▲미즈=건강문제 등 약점은 있지만 현 위치를 고수하거나 아니면 장관직을 약속받을 것이다. 그의 오랜 봉사에 보답하는 뜻에서 레이건이 대법원에 자리를 마련해줄지도 모른다.
▲디버=그는 몇달전 연봉6만달러로는 자녀교육도 힘들다면서 사직할 뜻을 비쳤으나 아버지처럼 존경하는 레이건 곁을 띠나지는 않을 것이다.
▲클라크=베이커기 그만둔다면 그 자리에 올라설 제1후보가 될 것이다. 1년도 채 못되는 외교경험을 가지고 국가안보 담당보좌관이 됐듯이 워싱턴경험이 부족하지만 그가 원한다면 제2인자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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