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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 없는 축구장, 그들만의 K리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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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 기자 중앙일보 스포츠부 차장
지난 8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K리그 클래식 전북과 제주의 경기가 열렸다. 전북이 올 시즌 우승을 확정한 경기였지만 관중석은 텅 비어 있다. [사진 전북현대]
송지훈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한국프로축구연맹(총재 권오갑)은 2012년 K리그 클래식(1부 리그)에 스플릿 시스템을 적용했다. 정규 시즌을 치른 뒤 12팀을 성적에 따라 두 그룹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상위 그룹 6팀끼리 경기를 해 우승팀을 가리고, 하위 6팀끼리는 강등팀을 가린다.

 이 제도를 3시즌 동안 운영해 봤지만 팬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방식이 복잡한 데다 순위와 기록의 정통성 문제가 불거지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우승을 다투는 그룹A 쪽으로 스포트라이트가 쏠리고, 그룹B 팀들은 철저히 외면받았다. 관중은 줄어들고 TV 중계나 언론 보도에서 타 종목에 확연히 밀리는 ‘그들만의 리그’가 이어졌다.

 중앙일보가 스포츠계 100인(축구계 50인+비축구계 50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11월 25일자 28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축구계 50인 중 스플릿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스포츠계에 몸담은 이들이 이 정도니 일반 팬은 말할 것도 없다. 설문 결과 스플릿 시스템을 유지하자(25%)는 의견보다 유럽식 단일리그(36%)나 정규리그 후 플레이오프(35%)로 바꿔야 한다는 응답이 훨씬 많은 게 당연했다.

 그러나 프로축구연맹은 여전히 제도 개선에 소극적이다. 스플릿 시스템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내년엔 A매치(국가대표 경기) 일정이 많아 단일리그나 플레이오프 제도로는 리그 일정을 짜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 열린 실무위원회에서도 연맹은 현 제도 유지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갔다. 회의에 참석한 한 인사는 “형식적으로는 스플릿 시스템과 단일리그가 안건으로 함께 올랐지만 실제로는 연맹이 스플릿 시스템의 방어 논리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말했다.

 진행 방식이 복잡한 스플릿 시스템은 프로축구에 익숙지 않은 이들에겐 일종의 ‘진입 장벽’이다. ‘K리그를 즐기고 싶으면 시스템부터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격이다. 합리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시스템의 도입은 프로축구가 생존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일본 J리그는 내년부터 기존 단일리그 방식을 포기하고 정규리그에 이은 플레이오프로 우승팀을 가리기로 했다. 경기장을 찾는 축구팬의 평균 연령이 매년 한 살씩 증가하고, 관중 수가 꾸준히 감소하는 통계를 근거로 발 빠르게 대응한 것이다. 젊은 팬을 확보하지 못하면 J리그가 고사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제도를 개선했다.

 한국 프로축구가 처한 상황은 J리그보다 훨씬 심각하다. 개혁을 더 늦춘다면 프로축구 회생의 ‘골든 타임’을 놓치고 만다. 프로 스포츠의 존립 기반은 첫째도, 둘째도 팬이다.

송지훈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