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가 일어나는데는 피해자의 책임도 있다"-일본서 「피해자학」국제심포지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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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범죄를 단지 범법자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에서도 연구·분석해보려는 새로운 학문이 있다. 이른바 「피해자학」-.
때마침 일본의 동경과 경도에서는 이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이 열려 일반의 관심을 모았다.지난 8월29일부터 4일까지 계속된 제4회 국제피해자학 심포지엄에 우리나라에선 김기두교수 (서울대), 민건방부장검사 (서울지검) 등 3명의 대표가 참가하기도 했다.
피해자학을 제창하는 학자들은 한쪽 손만으론 박수를 칠 수 없고 두손이 부딪쳐야만 소리가 난다는 점을 강조한다. 많은 범죄에서 결코 범법자만으로 범죄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경우에 따라선 피해자라는 존재가 범죄를 촉발시킬 수도 있다는 것.
여태까지는 전적으르 범죄자측의 사정만을 고려, 그 성격이나 심신의 결함이 범죄를 일으켰다고 보고 유전이나 지능의 발달과 범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거나 범법자의 환경을 문제시해왔으나, 이렇게해선 마치 흑백사진과도 같이 현실의 일면밖에는 찍어낼수 없어 사건의 전체상을 잡아내는데는 불가능하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범죄자가 노리기 쉬운 사람은 있는 법이며, 또한 조건만 갖춰진다면 누구라도 피해를 당하게 되어있다. 어느 누구라도 자신이 언젠가 죄를 지으리라고 생각하진 않더라도 어쩌면 피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보편화 돼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피해자로 뽑힐 확률이 높을까. 예를 들어 치한의 피해를 받는 사람은 성격적으로 약하고 내성적인 경우에 많다. 범인이 시험삼아 기분을 떠봤는데도 강력히 반발하지 않고 곤란한듯한 태도로 시중한다면 기회를 허용하고만다. 치한의 성격은 음습하므로 강력한 거절이 예상되는 사람에겐 접근하지 않는다.
학자들은 피해자학이 아직 학문적으로 단단히 정착된 단계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2차대전후 이 새로운 학문이 제창된 이래 크게 확산, 오늘날 대다수 문명국가의 학자와 실무자 사이에서 널리 지지를 받고 있다. 피해자학은 죄를 범한 극히 예외적인 소수의 악인이 어떻게 죄를 범했는지 그 원인과 대책을 연구하던 종래의 「범죄학」 「형사정책학」 에, 피해자측의 상황을 더해줌으로써 범죄에서 그려해야할 새로운 안목을 제공하고 있다. <동경=신성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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