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250m 땅밑서 물·갱목껍질 씹으며 사투14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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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태백=허남진·양원방기자】탄광의 지하수유출로 갱속에 갇혔던 광부4명이 사고 14일만에 극적으로 구출됐다.
지난 8월 20일 상오 7시쯤 태백시황지2동 태백 탄광(대표 김두하·42)채탄작업중 지하수가 터져 매몰됐던 배대창(23·선산부·태백시미전1동5통4반)·손정광(38·선산부·황지2동11통4반)·김기전(23·후산부·미전1동5통4반)·전기운(47·선산부·미전2동6통3반)씨등 4명의 광부가 사고발생 14일9시간40여분만인 3일하오4시43분쯤 구출됐다. 이들은 거의 빈사상태에서 구조됐으나 곧 태백시내 장생병원과 서울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고있으며 모두 생명에는 위험이 없다.
광부들은 지난2일하오부터 갱안의 물이 빠져 나감에 따라 구조의 손길이 가까와졌음을 확신하고 구조반이 자기들의 위치를 확인할수있게 하기위해 교대로 파이프를 두드리면서 지친 몸을 이끌고 조금씩 조금씩 갱입구 방향으로 기어나왔다고 말했다.
제일먼저 구조반의 품에 안긴 배대창씨는 『그동안 칠흑속에서 정신만 차리면 살수있다는 신념을 갖고 소나무 갱목껍질과 지하수로목숨을 이어왔다』 고 말했다.
매물광부 구출기록은 지난67년9월6일 충남청양 구봉광산에서 16일만에 구출된 양창선씨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 긴 기록이다.

<생존확인>
광부들의 생존이 확인된것은 3일하오3시쯤이었다. 구조반은 3일상오에 이어 하오1시쯤부터 구조작업을 재개, 산소공급용 콤프fp서를 이용해3분간격으로 2분동안씩 경내에 산소를 주입하며 파들어 가던중 하오3시쯤 막장 3m전방에 이르렀을 때 막장부근에서 쇠파이프를 돌로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곧 이어『나는 배대창이다. 우리는 모두 살아 있다』는 고함소리가 들렸고 구조반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며 구조작업에 급피치를 올렸다.
구조반들은 30분동안 더 파들어가다 마지막 장애물인 1t가량의 암석을 만났으나 암석 옆부분을 깨고 비좁은 구멍을 뚫어 마침내 막장과 통하게됐다.
이때 배씨는 구조반 바로 앞까지 기어나와 물이 괴어있는 곳에 서있었고 나머지 3명은 기진맥진한채 막장구석에 누워있었다.

<구조순간>
하오4시43분 배대창씨가 밍크담요로 말린 채 광차에 실려 맨 먼저 갱구밖으로 나오자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있던 가족·동료광부·태백시민등 1천여명이 일제히 박수를 치고 만세를 부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어 김기전씨등 광부3명이 차례로 갱구밖으로 구출돼 무사한것을 확인한 가족및 동료광부들은 서로 얼싸안고 울음을 터뜨리는등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배씨는 이날 구출된직후『살아나온것이 꿈이 아니기를 빈다』 고 말했다.

<구조작업>
사고발생직후 태백탄광측은 인근 광업소에서 양수기17대를 지원 받아 20명씩 3개조로 구조반을 편성, 24시간 계속 물을 퍼내고 탄과 물이 범벅이된 축탄을 파내는작입을 벌였다.
그러나 갱내에는 계속 지하수가 흘러나왔고 지난달26일 태풍 엘리스호의 영향으로 쏟아진 집중호우로 갱도가 다시 침수돼 구조작업을 지연시켰다.
광업소측은 이때문에 갱내에 갇힌 광부들이 모두 숨졌을 것으로 보고 시체발굴작업을 펴다 뜻밖에 배씨등 전원의 생존을 확인했다.

<광산촌>
생환광부 손순광씨등 3명이 입원해있는 근로복지공사 장생병원에는 구출광부들의 심신이 크게 불안정한 상태여서 4일상오까지 가족·친지의 면회를 금지시켰다.
또 태백시 서울의원2백1호실에 입원한 배대창씨는 회복이 비교적 빨라 4일 상오 미음을 먹었으며 가족들에게 『곧 걸어나갈테니 집에서 기다리라』 고 말하는 여유를 보이기도했다.
한편 3일 상오까지만 해도 배씨의 장례문제까지 의논했던 태백시황지2동 배씨집에는 이웃주민 30여명이 3일 하오부터 모여들어 생환을 축하하는 잔치를 .벌이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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