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전입만 탓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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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내년도 고교입학 추첨배정을 앞두고 대도시의 이른바 「신흥명문교」주변에 전입사태가 일고있다 해서 물의를 빚고있다.
단일학군으로 되어있는 서울 여의도지역에서 위장전입학생들 때문에 자녀들이 타학군으로 밀려났다해서 학부모들이 집단항의를 벌이는 일은 거의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지만 이런 현상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82학년도의 경우 당국조사를 보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중·고생 가운데 거주지를 허위로 꾸며 위장전입한 뒤 「명문고교」에 들어오는 학생이 전체의 5∼7%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일이란 『날아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낸다』는 속담처럼 다론 사람에게 피해를 줌은 물론 실제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에의 통학을 강요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부담을 주고 불필요한 통학거리 연장으로 교통체증의 원인을 이루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그런 행위자체가 떳떳지 못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명문고교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주민등록을 옮기는 궁색한 짓을 하는 학부모들의 처지를 나무랄 수만은 없다.
「명문」의 기준이 이른바 일류대학에 얼마나 많은 학생을 입학시키느냐에 따른다는 것은 에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고교평준화시책이 시행된 후 전통있는 명문고교는 없어졌지만 몇몇 사학이 새로운 「명문교」로 등장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국민에게 비슷한 교육여건 밑에서 비슷한 빈의 교육을 보장한다는 이른바 교육의 「기회균등」이란 이상론에서 출발한 평준화시책이 그동안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부 명문의 성가가 퇴락한 반면 새 명문이 등장해서 「위장전입」등 숱한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증좌인 것이다.
옛날처럼 당당히 실력을 겨루어서 입학을 결정하는 것도 아니니 일부 피해를 보았다고 여기는 학부모들의 원망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학군배정 때마다 말썽이 이는 곳은 특정지역뿐이 아니다. 가령 서울강남지역은 남자학군은 좋지만 여자학군은 그렇지 못하다는 세평이다. 그래서인지 금년의 경우 남자는 1천2백명이 넘쳤고 여자는 7백여명이 모자라는 기현상마저 빚었다.
얼마전 서울Y교에선 30명정도의 학생들이 위장전입으로 적발되어 거주학군으로 쫓겨난 일이 있었지만, 그 숫자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시교위는 중3년생 18만명을 대상으로 위장전입자를 가려내기로 하고 위장전입한 사실이 밝혀지면 배정원서를 써주지 말라고 지시했다 한다. 교위가 이런 궁색한 방침을 공표한 사정을 이해는 할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수사기관처럼 이사를 자주 다니는 학생, 아파트 세입주자 등을 중심으로 위장전입자를 가려낸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법에 근거하는 것이며, 그런 행위자체가 학교교육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서도 고려를 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류대학에 많은 학생들을 입학시키는 고등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또 우수한 학생들이 많은 학교에서 마음껏 실력을 겨뤄보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심정도 나무랄 수는 없다.
문제의 근원은 한마디로 제도에 있다. 교위가 위장전입생을 가려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여건도 되어있지 않은 채 평준화시책을 강행해놓고 거기서 불가피하게 파생한 부작용의 책임을 학부모들에게 미루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선후가 도착된 이러한 조치를 강행하기보다는 지금이라도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가려 차근차근 개선하는 노력을 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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