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 칼럼

의료윤리를 짚어보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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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의료와 의학연구, 그중에서도 특히 사람으로부터 자료를 얻는 임상의학연구는 그 대상을 사람으로 한다는 점에서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모든 관련 행위는 윤리적이어야 하고, 과학적 근거를 가지며,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고 상호 연관돼 있다. 대개 과학적이지 않거나 효율적이지 않은 연구는 윤리적이지도 않으며, 과학적 근거가 없는 연구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도 없다. 우선 그중 의료의 윤리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 왕규창 서울대 의대 학장

윤리성이라는 말은 무척 형이상학적으로 들리겠지만, 간단히 설명하면 예상되는 이득이 우려되는 위해보다 명백히 상회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의 부당한 경제적.신체적 이익이나 학술적 명예 등 때문에 환자 진료 방침이 왜곡된다면 당연히 이는 비윤리적이다.

윤리성에 있어 환자 자신에 대한 사항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지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도 포함해 고려해야 한다. 장기 공여를 위한 뇌사 판정의 경우 환자의 뇌기능 상실을 확진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장기를 받는 사람을 위해 공여되는 장기가 손상되지 않도록 배려가 있어야 한다. 전쟁터에서 더 위중한 환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휘관이 먼저 치료를 받는다든지 곧 전투에 재투입될 수 있는 환자를 우선 치료하는 것 등이 전황에 따라 윤리적일 수 있다.

그리고 윤리성은 '설명을 듣고 이해한 뒤 서명한 동의서'보다 우선하는 개념이다. 의학 발전을 위해, 이웃과 국가를 위해 내 한 몸 희생하겠다고 나선다 하여 명백히 위해가 큰 사안에 응해서는 곤란하다.

일반적으로 윤리성은 도덕.학교.종교 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하듯이 경직되고 절대적인 느낌을 준다. 의료 윤리의 원칙은 정해져 있다. 그러나 의료의 각 사안에 있어 윤리성은 전술한 바와 같이 그 자체가 예상되는 이득과 위해 사이의 저울질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개념이다. 동일한 행위가 상황에 따라 윤리적일 수도 비윤리적일 수도 있다. 과학기술과 사회문화적 변화에 의해 수년 전에는 비윤리적이었지만 지금은 윤리적인 것들이 있고 그 반대의 것들도 있다. 장기이식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비록 소생 가능성이 없어보이는 환자라 해도 그로부터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심장을 들어내는 것은 당연히 비윤리적이었다. 그것 말고는 다른 치료방법을 시도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직 승인되지 않은 개발 중인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윤리적이다. 동일한 치료 방법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 효능이 커지면서, 즉 예상되는 이득이 많아지면서 점차 윤리적인 치료법이 되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허용되는 위해의 범위가 커질 수도 있다.

이렇게 의료 윤리의 각 사안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변하는 여건을 반영해 판단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수년 전, 수백 년 전 교과서나 성전에 쓰인 내용으로 판단하기에는 과학과 사회의 변화가 너무 빠르고, 미리 예상했던 범위를 벗어나 발생하는 일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법률을 제정해 의료의 윤리성 심의를 의무화하고 강화할 수 있지만 개별 사안의 윤리성 판단을 법률로 일일이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이다. 이 분야에 대한 전문가가 많이 필요한 것도 윤리 원칙을 의료 현장에 적용할 때 의학 전문 지식과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고려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윤리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 법조인을 비롯한 비의료인이 포함된 위원회에서 심의하고 결정한다. 이 판단에 의해 환자와 관련자들의 안전과 이득이 좌우될 수도 있기에 전문성을 요하는 매우 조심스러운 업무다. 완벽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하는 것이 윤리적이기 때문이다.

왕규창 서울대 의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