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486)제78화 YWCA 60년-사회 프로그램(4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세계YWCA가 1백주년 기념 세계대회를 열면서 앞으로의 방향을 선정한 다음해인 56년의 한국Y 전국대회에서는 YWCA운동의 본질을 네 가지로 표현했다.
▲회원의 운동으로서 ▲여성의 운동으로서 ▲기독교 운동으로서 ▲국제적 운동으로서.
이러한 표현은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계몽운동을 넘어선 좀더 적극적이고 행동적인 사회참여와 운동체로서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 대회를 기점으로 한국Y는 이웃의 부름에 응답하려는 자세로 프로그램 면에서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Y가 비정치적인 단체라는 것은 변함이 없고 처음 시작할 때부터 정치적인 관심 밖에서 프로그램을 전개해 왔다. 다만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늘 민감했으며 기독교적인 기반에서 어떤 문제를 다루려 했다.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관심을 기울인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사회가 요구하고 필요로 하는 도움을 적극적으로, 그러나 평화적으로 하겠다는 의지가 강해진 것뿐이다.
6·25가 결국 유엔의 힘에의해 약간 변경된 38선을 다시 만들어 휴전으로 끝났고 53년에 정부가 서울로 완전히 귀환함으로써 잠정적인 것 같으면서도 어느 정도 영구한 안정을 찾게 되자 당시 집권당인 자유당은 정권유지를 목표로 차차 방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승만대통령을 종신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기 시작한 것이 56년 선거 때부터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 민심은 점점 야박해지고 정부에 대한 원망, 비민주주의에로 기울어져 가는 자유당의 행패에 모두 얼굴을 찡그리게 되었다.
그래서 「사회정의」를 부르짖어야했고 Y의 프로그램도 사회에 만연한 악덕을 제거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56년 전국대회때 김활난박사는 교회 예배 선교에서 이렇게 말했다.『주께서 오늘 우리를 부르는 것은 전체를 희생적으로 바치자는 말씀이다. 악덕과 덕이 대결하는 자리로 우리 다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 말은 회원들로 하여금 사회악을 제거하며 정의를 세우는데 과감히 참여할 것을 촉구한 절교였다.·
다음 58년에 있었던 20회 건국대회에서는 『여성의 요구-우리 기독교적 임무』라는 주제로 여성문제를 중점적으로 토의했다. 그 외에 이 대회에서 다른 문제는 공중보건문제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시정하도록 문교부·보사부·내무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합승·버스 안에서의 금연, 인원 초과 방지에 대하여 ▲아무 데나 침을 뱉는 일과 소변보는 일이 없도록 ▲거리에서 파는 음식물은 반드시 덮도록 ▲음식점의 그릇· 수저·행주 등을 깨끗이 하도록 ▲영화관에서의 술 광고를 삼갈 것.
24년이 지난 오늘에도 이상의 문제들은 시정되지 못한채 아직도 계속 계몽해야 할 우리의 민도다. 교육열이 세제 제일이라고 하는 이 나라에서 아직도 거리에 가래침을 뱉는 사람이 없어지지 않고 음식점 관리에 허점이 너무 많아 며칠 전에도 서울 유명 냉면집 냉면에 대장균이 우글거린다는 기사가 사람들을 놀라게 하니 그 교육은 무엇에 쓰는 것인지 묻고 싶다.
그렇게 작은 일을 무시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영어 몇자 더 알고 세계사를 줄줄 외는 것이 고작이라면 교육에 뜻이 없다. 지금이 시점에서라도 좀더 실질적인 교육에 눈을 떠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이때 또 특별사업으로 채택한 것은「혼인신고 강조운동」이었다. 이것은 여성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데 어성들의 법적 지위에 대해 너무나도 많은 여성이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서 받는 피해가 적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2년 후에 있을 대회 때까지 전국 구석구석을 찾아 계몽하고 빨리 신고하여 법적 지위를 우선 확고히 하라고 촉구했다.
59년4월부터 3개월간을 특별기간으로 정하고 강연·좌담회·만화·포스터·뉴스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프로그램을 전개했다.
그해 6월에는 각 지방 Y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혼인신고를 하게 했는지를 따져 시상하기로 했다. 많은 여성들이 자기가 호적에 올라 있는지, 올라있지 않은지 모르고 있는 상태로 남편이 어떤 부정한 일을 한대도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이 당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여성의 위치를 보호하기 위해 벌인 운동은 축첩자에 대한 것으로 이 운동은 4·19가있은 이후의 운동이기에 후로 미루어 두겠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