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불법 도청 '핵폭풍'] '판도라 상자' 이해득실 계산 분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 배기선 열린우리당 사무총장(가운데)이 29일 당사에서 열린 고문단 회의에서 안기부의 불법 도청과 관련해 한나라당 의원들의 고해성사를 촉구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 임태희 한나라당 원내 수석부대표(왼쪽)가 29일 국회기자실에서 안기부 불법 도청과 관련한 당실무회의 결과를 밝히고 있다. 김형수 기자

29일 안기부 도청 테이프가 추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정치권이 긴장했다. 통신비밀보호법 때문에 검찰은 불법 도청 테이프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수사 과정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200여 개에 달하는 미림팀의 도청 테이프 중 일부만 공개돼도 정치권 전체가 메가톤급 핵 폭풍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인식이다.

일단 여야는 겉으론 한목소리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검찰 수사를 지켜보는 여야의 속내는 엇갈린다.

불법 도청 테이프 녹취록이 공개된 뒤 연일 한나라당을 상대로 공세를 펴 온 열린우리당은 당내에서조차 반응이 다르다. 그간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에 비해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하면서 "한나라당은 역시 차떼기당"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검찰이 미림팀장이던 공운영씨가 보관 중이던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을 전부 압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부터는 미묘한 입장차가 감지된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완전 공개를 요구한다.

전병헌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이번 기회에 모든 도청 문제를 비롯해 테이프 내용에 있는 불법 대선자금 문제까지 밝혀져야 한다"며 "과거 정권에서 자행된 파렴치한 만행에 대해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확실히 밝히고 정리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일각에서는 압수 도청 테이프의 완전 공개에 반대한다. 정세균 원내대표는 "불법 도청 테이프를 공개할 경우 온 나라가 떠들썩해지면서 혼란만 가중될 뿐"이라며 "차라리 타임캡슐에 넣었다가 후대에 보게 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다"며 완전 공개에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반면 1997년 당시 신한국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 전 총재의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곤욕을 치른 한나라당은 여권에 화살을 돌렸다. 이정현 부대변인은 "모두 소각 처리했다던 불법 도청 테이프가 274개나 추가로 나왔다면 누가 이 정권을 믿겠느냐"면서 "여권은 더 이상 테이프를 정략적으로 악용해선 안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특검 도입의 필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또 "불법 도청을 뿌리 뽑고 진상 규명을 위해 한나라당은 어떤 제한을 두고 회피할 생각이 없다"면서 "테이프의 공개 여부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더욱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미림팀이 활동할 당시는 김영삼 대통령 시절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 총재여서 문제될 게 없다"면서 도청 테이프 공개에는 반대했다.

공 전 팀장이 99년 당시 박지원 문화부 장관과 천용택 국정원장을 상대로 '복직 요청'을 하면서 DJ의 대선자금 공개를 협박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설(說)이 부담감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은 "도청 테이프가 불법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며 "이것이 공개됐을 경우 예상되는 인권 침해와 사회 혼란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런 걸 생각했을 때 테이프는 전량 폐기해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낙연 민주당 원내대표도 "검찰이 이걸 공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가기관이 저지른 불법을 국가기관이 공개하는 것은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민노당은 도청 테이프를 완전 공개하고, 대상자들을 수사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통신비밀보호보다 국가 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적 사안인 만큼 공개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면서 당장 임시국회를 열어 특검과 국정조사를 추진하자고 요구했다.

심상정 의원단 수석부대표는 "압수된 테이프와 녹취록은 하나도 빠짐없이 국민에게 즉각 공개해야 한다"며 "여기서 제기된 또 다른 부패와 비리 의혹도 특검과 국조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철희.박소영 기자 <chlee@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