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폐지, 화장실 제한 … 바둑대국도 스포츠 경기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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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LG배 본선이 열린 백담사 근처의 만해마을은 시인 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 선생을 기리는 테마마을이다. 백담사는 만해가 1905년 출가해 수행했던 절이다. 시합 장소는 마을 내 ‘문인의 집’. 식사 후 차 한 잔 마시고 대화하기에 좋다. 하지만 대국 풍경에 점심은 없었다. LG배가 이번 대회부터 점심시간을 없애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폐지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삼성화재배가 세계대회 사상 최초로 점심시간을 없앴다. 승부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 후 4년. 이제는 점심시간 폐지가 승부세계의 대세가 됐다. 대신 대국장 한 편에 간식을 준비해 대국자가 자유롭게 체력을 보충하도록 한다.

 이유가 있다. 프로의 실력이라면 훈수는 쉽다. 눈짓만으로도 묘수와 형세판단을 귀띔해 줄 수 있다. 만에 하나 점심시간이 그런 훈수의 시간으로 악용될 수 있다.

 공정성 확보는 바둑의 정체성이 스포츠로 바뀌고 제한시간이 짧아졌기에 요청되는 현상이다. 제한시간이 4시간을 넘으면 점심시간을 없앨 수가 없다.

 한국기원은 현재 화장실 문제도 논의 중이다. 화장실 사용법은 공정성의 핵심이다. “초읽기 때 화장실 사용 등 개인적 사유로 계시기를 정지시킬 수 없으며, 상대방이 자리를 비운 사이 착점한 경우에는 상대가 돌아왔을 때 둔 곳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사소한 것 같지만 프로의 세계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한국기원은 개인 사유에 따른 일정 조정도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대국 내규’는 “공식대회에 참가하는 기사는 본원에서 지정한 대국 일시 및 장소에서 대국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예선의 경우 관례적으로 대국 당사자가 합의하고 사무국에 통보하면 지정된 날짜를 조정해서 대국하는 경우가 있었다. 일정 관리를 넘어서서 대국의 공정성과도 직결된 문제다.

문용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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