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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족구왕 … 헛발질해도 스트레스 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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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동호회에서 족구를 즐기는 주부 김서연(45)씨가 네트 앞에서 날카로운 공격을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지난 16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합어린이공원. 40~50대 여성 8명이 네트를 가운데 두고 가쁜 숨을 내뿜고 있었다. 제법 차가워진 공기가 무색할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이들은 ‘족구하는 여자’다.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군대에서 족구를 즐긴 경험이 있을 것이다. 족구인들이 “국내 족구 인구가 2000만 명쯤 된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족구는 낯설다. 올 여름 개봉한 영화 ‘족구왕’에서 예쁜 여대생이 족구하는 복학생을 좋아하는 건 판타지에 가깝다.

 그러나 이곳에서 만나본 여성들은 달랐다. 주부 김서연(45·용산 보광클럽)씨는 “웬만한 남자팀과 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여성 족구인들은 노련하게 헤딩으로 리시브를 하고, 네트 앞에선 날카롭게 공을 찍어 찼다. 남자에 비해 파워는 떨어져도 조직력이 좋았다. 때문에 랠리가 꽤 길었다.

 이날 열린 교류전에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8개 여자 족구팀 40명의 선수들이 모였다. 22일과 23일 충북 충주시에서 열리는 ‘2014 국민생활체육 전국 족구클럽 최강전(국민생활체육회가 주최)’ 출전에 앞서 평가전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아줌마’들의 족구는 군대의 전투체육 못지않게 치열했다.

 손광진 서울시족구연합회 여성청소년부 이사는 “전국대회에 출전하는 상위권 팀들의 경기 수준은 묘기에 가깝다”고 귀띔했다. 김서연 씨는 “서울 팀에 비해 지방 팀들의 전력이 훨씬 강하다. 지방 도시의 훈련 여건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서울에 족구 경기장이 5개뿐인 반면 지방도시엔 족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많다”고 설명했다.

 여자 족구는 전국대회 성적에 따라 최강-1-2-3부 등 네 단계로 나뉜다. 국민생활체육회를 비롯, 각 단체에서 매년 15개 정도의 전국대회를 연다. 팀별로 연간 6개 정도 대회에 참가한다. 서울에 10개, 전국에 40개 여자 족구 동호회가 있다. 김씨는 “등산을 포함해 여러 가지 운동을 해봤지만 족구 만큼 재미있는 게 없다. 여자 족구 동호회엔 40~50대 주부가 대부분인데, 팀을 이루고 손발을 맞추는 걸 즐거워 한다. 스트레스 해소에 최고”라며 웃었다. 여자가 족구를 하려면 처음 1년은 헛발질할 각오를 해야 한단다. 그 고비를 넘기면 여성 특유의 유연성을 바탕으로 멋진 자세가 나온다. 족구의 매력에 빠진다면 일주일에 하루쯤은 ‘주부’가 아닌 ‘선수’로 보낼 수 있다.

글=김식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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